얼마 전 파크 골프장에서 집사람과 골프를 치고 있었다. 어떤 할머니가 다가 오더니, “골프채는 이렇게 바로 잡고, 걸음은 빠르게 걸어 다녀야지” 하면서 집사람에게 잔소리를 해댔다. 아무리 그래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렇게 잔소리를 할 수 있는지 기분이 상했다. 한마디 응대하면 싸움이 될 것 같아 대충 피해 지나갔다. 또 다른 날에 어떤 할머니는 “파크 골프를 치려면 모자를 써야 하고, 골프채는 올해 새로 나온 라벨을 붙인 것을 사용해야 한다”고 잔소리를 했다. 그래서 “아직 정초이고, 협회 사무실에 문이 잠겨 있어 회비를 납부하지 못하고 라벨을 받지 못했다”고 하니, 자기가 총무인데 지금 처리해 주겠으니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업무가 끝날 때까지 계속 잔소리를 해서 할 수 없이 한마디 대꾸를 하여 잔소리를 멈추게 했다.
늙으면 머리가 희어지고, 눈은 침침해 지고, 이빨은 나가고, 허리와 다리가 아프듯이 두뇌도 퇴화한다. 그래서 노인들은 기억력이 나빠진다. 기억력만 나빠지면 천만다행이겠지만, 대상회가 퇴화하면 고집이 세어지고, 완와전전두엽이 퇴화하면 참을성도 없어진다. 상대의 조그만 흠집에도 잔소리가 많아지고, 자랑질을 일 삼고, 상대에 대한 배려심도 줄고 자기 중심적이 된다.
옛날에 양노원에 봉사를 갔을 때 양노원 원장님께 “무엇이 가장 힘드는지” 물어 본 적이 있다. 양노원 원장님은 “노인들끼리 싸우는 것을 말리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한 노인이 매일 아침만 먹으면 대문 앞에 나가 안 오는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른 할머니가 안타까워 “오지 않는 아들을 뭐할려고 기다리나” 하고 핀잔을 주니, “니가 안 오는 것 봤나” 하는 식으로 싸운다. 이렇게 말싸움이 시작되는데, 말로 이기기 힘들면 한 할머니가 다른 할머니의 빰을 힘껏 때려주고 획 돌아가 버린다. 그러면 휠체어를 타고 걷지 못하는 할머니는 헉헉 거리면서 분을 참지 못한다. 그러나 걷지 못하니 맞고 살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이런 세상에서는 걷는 것만 해도 왕이 된다.
며칠 전 새로운 시니어 하우스로 개장한 라우어에 가 보았다. 시설은 정말 초호화판으로 일류 호텔 이상이었다. 수영장, 도서관, 골프장 등 없는 것이 없었고, 식당도 일류 호텔 이상이었다. 걷으로 보기에는 여기서 인생의 말년을 보내는 것이 정말 최상의 행복일 것 같았다.
라우어의 직원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여기에 입주하는 노인은 판검사, 변호사, 의사, 정치인, 교수 등 소위 우리 사회에서 최상류 계층이라고 했다. 이런 계층의 노인이 모인 곳이 과연 호화시설과 같이 살기 좋은 곳일까? 시설 좋은 사니어 하우스에 입주했다가 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좋은 시설에 살지만 노인들의 특성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 같았다. 집에서 살면 간혹 세수 안하고 가벼운 차림으로 식탁에 앉을 수도 있는데, 세수를 안하고 식당에 가거나 차림이 허술하면 노인들의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잔소리에 응대라도 하면 끼리끼리 모여 쑥덕거리고 패거리를 지어 따돌림을 시키는 것도 다반사라고 했다.
특히 판검사나 교수 등 갑질하며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노인이 되어 한 곳에 모여 살면 참을성은 줄고, 매일 잔소리나 자랑질을 하면 고역이라고 했다. 모이면 “왕년에 내가 무엇을 했다”고 우쭐대고, “지난주에 우리 아들이 다녀가면서 돈 100만원을 주고 갔다”고 자랑질을 하는 소리를 매일 듣고 있는 것도 고역이라고 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이웃이 정말 중요하다. 특히 늙은 노인이 한 아파트에 이웃으로 살면서 공동생활을 해야 한다면 더욱 이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자랑질이고, 잔소리하고, 패거리 지으면서 왕따시키는 이웃들이면 삶이 고통이 될 수 밖에 없다. 옛날 어떤 사람이 2천만원 시세의 집을 1억에 구입하여 이사를 갔는데, 왜 그렇게 비싼 값을 치렀는지 물어보니 나머지는 이웃 값이라고 했다. 삶에서 이웃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나는 퇴임한 교수들 모임에 안나간다. 외국에서 박사를 받아온 사람들이 정년 퇴임 후 등산을 가는 것으로 소일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데, 당구장에 모여 정부돈 더 받아 먹는 방법이나 누구 비난하는 이야기로 남은 여생을 보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지인이 향우회에 나오라는 간곡한 부탁이 있어 몇 년전에 향우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지금 보니 탄핵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인데, 이들이 무슨 시장이니, 국회의원이니 하면서 활개를 치는 것을 보고 다음부터는 발길을 끊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친한 친구가 나와 식사 자리를 주선한 일이 있는데, 정치인과는 거리를 두며 살겠다고 거절한 적이 있다. 나는 갑질하는 사람들과는 가급적 거리를 두고 살아왔는데, 노인이 된 지금 다시 갑질 노인이 득실대는 곳에 갈 필요가 있을까? 나는 좋은 시설에서 화려하게 사는 것보다 갑질 노인들과 거리를 두면서 평온하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