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두뇌 동작을 통해 이루어진다. 부처님 같은 깨달은 사람은 두뇌 신경망이 없이 살았을까? 아니다. 예수님이나 부처님도 몸을 가지고 식사를 하며, 두뇌를 가진 인간들이었다. 부처님도 두뇌 동작을 통해 말하고 행동하면서 일생을 살았을 것이다. 단지 그들의 두뇌는 일반 사람들과 다르게 동작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뇌과학자이면서 중풍을 겪고 회복한 볼트 질 테일러의 경험에 의하면 두뇌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이 다를 수 있다. 개체 하나하나가 생존을 위해 동작할 수도 있고, 세상 전체가 하나같이 인식될 수도 있다. 또 감각의 범위 역시 다를 수 있다. 깨우친 사람은 보통 사람들과 인식 범위가 다르고, 세상 전체가 하나같이 인식될 수도 있으며, 순간순간 알아차리며 살 수도 있다.
기억용량이나 처리 속도 면에서 이제 인간은 인공지능을 따라갈 수 없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훈련받은 범위에서만 동작한다. 인공지능은 프로그램된 대로만 동작할 수 있다. 훈련 데이터에 없는 환경변화에 대해서는 환각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은 환경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즉 인공지능과 달리 훈련받지 못한 환경에서도 대응할 수 있다.
인공지능과 달리 인간은 프로그램된 대로 동작하지 않을 수 있다. 즉 의식하면 프로그램된 대로 동작하지 않을 수 있다. 프로그램된 대로 동작하지 않으려면 그 순간에 의식해야 한다. 알아차려야 한다. 알아차리면 프로그램된 대로 동작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깨달은 사람은 순간순간 알아차리는 상태로 있을 수 있다. 이 점이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보통의 사람과 다르지 않았나 생각된다.
알아차림을 위한 의식도 두뇌의 동작에서 나온다. 잠을 잘 때는 의식이 없다. 의식이 없으면 알아차림도 없다. 따라서 우리가 죽어 두뇌가 동작하지 않으면 의식도 없다. 의식이 없으면 알아차림도 없다. 사후에는 알아차림도 없다.
죽으면 터널을 지나고, 조상을 만나며, 영혼이 있다는 이야기는 모두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다. 임사체험이나 체외이탈 실험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현상을 사후세계 이야기로 지어낸 것이다. 임사체험은 아직 두뇌가 동작하는 상태다. 두뇌가 완전히 망가져서 회복불능 상태가 되면 앎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진정으로 사후세계를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완전히 죽으면 다시 깨어날 수 없고, 이렇게 깨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후세계로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사후세계는 두뇌가 없는 물리세계로부터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예수님이나 부처님도 두뇌를 가지고 살았을 것이고 이들은 아마 보통 사람들과 다른 두뇌 모드로 동작하였을 것이다. 인식 범위가 넓고, 세상이 하나로 인식되거나, 순간순간 알아차림 상태로 동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동시대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성인으로 추앙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사후에 인간들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덧붙여 미화하고 이를 통해 종교가 탄생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즉 종교도 인간이 만들어낸 창작물이며, 특히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사후세계는 인간이 만들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종교는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좋은 도구다. 누구나 훈련을 통해 순간순간 알아차림에 접근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부처님과 같은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 종교에서 말하는 사후세계는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두뇌가 동작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죽어서 두뇌가 완전히 와해되어 동작을 멈추면 앎도 없다.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단지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