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로 인해 세상이 떠들썩하다. 무엇이든 물어보면 척척 대답해 주고, 인간보다 글을 잘 쓰며, 인간보다 그림을 잘 그리고, 인간보다 노래를 잘 짓는다. 앞으로 인간보다 운전을 잘 할 것이며, 대부분의 일을 인간보다 더 잘 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억용량이 무제한이고 처리속도도 인간 두뇌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사무실에서 서류를 처리하고, 고객을 응대하며, 기획, 설계 등 창의적인 일도 인공지능이 맡을 것으로 보인다. 육체적인 일을 기계가 잘 하듯이, 앞으로는 정신적인 일도 대부분 인공지능이 더 잘 할 것이다. 몸으로 일 하는 사람이 불도저로 일하는 사람을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듯이,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은 비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잘 할 수 있는 일은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인간은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야하지 않겠는가?
인공지능과 비교하여 인간 두뇌는 무엇이 다른가? 인간두뇌는 나(self)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동작하지만, 인공지능은 그렇지 않다. 인공지능은 단지 인간이 시키는 일을 할 뿐이다. 인간 두뇌가 프로그램된 대로, 습관대로, 무의식적으로 동작하는 것은 인공지능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점은 의식이다. 의식은 신경망의 동작을 알아차리는 것이고, 인간은 의식하는 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신경망의 동작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인공지능과 마찬가지고, 이 수준에서는 인간이 도저히 인공지능을 따라갈 수 없다.
인공지능은 순간순간 신경망의 동작을 알아차리고 “왜 신경망이 그렇게 동작해야 하나?”를 생각할 수 없다. 언제나 프로그램된 대로 동작한다. 프로그램된 대로 동작하면 변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없다. 반면 인간은 의식할 수 있기 때문에 변하는 세상에 적응할 수 있다. 인터넷, 로봇에 이어 인공지능이 등장하고 온난화로 지구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이제 근본부터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많은 사람들은 돈이 있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왜 돈에 집착해야 하나? 부와 권력의 상징인 강남은 거대한 정신병동이 되어가고 있는데… 강남 사람은 불면증과 우울증 환자가 아주 많고, 남을 믿지 못하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돈 때문에 형제들끼리 원수가 되고, 심지어 마누라와 자식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행복하게 살려고 한다. 그런데 왜 행복을 추구하나?, 진정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행복은 두뇌가 생존과 번식을 위해 만든 도구다.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면 쾌감을 느끼고, 그렇지 못하면 고통을 느낀다. 이렇게 살면 우리는 환경에 휘둘리게 되고 환경에 따라 쾌락도 느끼지만 고통도 벗어날 수가 없다. 환경은 늘 변하기 때문에 이런 행복을 추구하면 쾌락과 고통을 윤회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내(self)가 잘 살아야하고, 내가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여기서 “나”라는 것도 두뇌가 생존과 번식을 위해 만든 도구에 불과하다. 그리고 두뇌는 환경을 경험하면서 언제나 변하기 때문에 불변의 나란 없다. 두뇌가 그렇게 동작할 뿐, 나라고 할만 한 것이 없다.
많은 경우 두뇌는 오동작을 한다. 화가 날 때 몸에서 나타나는 F/F(Fight or Fleight) 반응은 원시밀림에서 우리 조상이 호랑이를 만나 생존의 위협을 느낄 때 대응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우리 두뇌는 마누라 말 한마디에 생명이 위험하다고 반응하는 오동작을 하는 것이다.
내 두뇌의 오동작 중에서 큰 것 몇 개는 고쳤으면 하는 것이 있다. 먼저 이 나이에도 내 두뇌가 생존과 번식을 위해 동작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점이다. 즉 내 두뇌 신경망이 살려고 발버둥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존과 번식에 매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85세 이상의 사람 중 40%이상이 치매에 걸린다고 한다. 부부중 한 명이 치매에 걸려 10~20년을 그 상태로 산다는 이야기다. 일본의 경우 간병살인이 자주 일어나는데, 남편이나 자식이 치매에 걸린 아내나 부모를 돌보다가 너무 힘들어 동반자살을 한다고 한다. 밤마다 잠을 안자고 집밖으로 나가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그래서 착한치매가 되도록 내 신경망를 고쳤으면 한다. 내 두뇌의 신경망이 많이 망가져도 시킨대로 하고, 매사에 “감사합니다” 하는 착한 신경망만 남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평소에 그렇게 살아 그런 신경망을 강화시켜야 한다.
어떤 선장이 배를 몰고 있었는데 다른 배가 와서 부딪쳤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나가 보니 그 배는 빈 배였다. 빈 배를 원망하지 않듯이, 무의식적으로 동작하는 상대도 대부분의 경우 습관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반응한다. 신경망이 그렇게 프로그램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에게서 원인을 찾지 말고 그런 환경에 반응하는 내 신경망을 알아차리자. 대신에 폭풍우 치는 곳을 피하듯이 나쁜 신경망을 가진 인간 곁에는 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나라는 것은 두뇌가 만든 것인데, 나라는 것에 갇히면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나의 두뇌는 순간순간 생존과 번식을 위해 나라는 개념에 갇혀 동작한다. 암에 걸려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도, 여자를 밝히는 것도, 손자손녀 자랑하는 것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두뇌 동작이다. 이렇게 나라는 것에 갇혀 살면 고통은 피할 수 없다. 70을 넘은 나이에도 꼭 그렇게 살아야할까?
신경망을 좋게 고치려면 순간순간 신경망의 동작을 알아차려야 한다. 알아차려야 고칠 수 있다. 알아차리고, 알아차림의 상태에 머물면 언제나 평온하다. 순간순간 알아차리면 언제나 평온하다. 이것이 진정 행복하게 사는 삶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