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벼락을 맞아 죽으면 “전생에 죄가 많아 그렇다”라고 믿었다. 멀쩡한 사람이 순간적으로 타 죽으니 공포스럽기도 하고, 이유를 알 수 없으니 “하느님의 천벌”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벤자민 프랭크린이 실험을 통해 벼락이 전기현상이라고 밝힌 후에는 더 이상 하느님의 천벌이니, 전생에 죄를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에 벼락을 맞지 않으려면 초고층 건물에도 피뢰침을 설치하면 되고, 천둥번개가 칠 때는 들판에 삽을 메고 다니지 말라고 안전교육을 한다.
두뇌를 모를 때는 임사체험을 종교적으로 설명했지만 이제는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죽기 직전에 터널을 지나는 것은 시각중추가 망가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고, 한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는 것도 두뇌의 동작에서 나오는 현상임을 밝히고 있다.
중풍으로 말을 못하거나 사지를 못써는 사람을 보면,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두뇌의 동작임을 알 수 있다. 간혹 죽어서 천당에 갔다 왔다는 사람들이 있는데(지옥에 갔다 왔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죽어 두뇌가 망가졌다면 어떻게 천당을 경험할 수 있겠는가? 천당을 보았다는 것은 두뇌가 동작하고 있었다는 의미가 되고, 두뇌가 동작하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은 죽지 않았다는 의미다. 정확하게 말하면 죽은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누구나 사후의 이야기를 하면 지어낸 이야기라는 의미다.
인간처럼 대화하고, 기억용량이나 처리속도면에서 인간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인공지능이 등장함에 따라, 왜 인간을 고용해야 하는지, 인간이 인공지능보다 나은 점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인공지능은 훈련받은 대로, 즉 프로그램된 대로 동작한다. 이는 환경이 변하지 않으면 아주 효율적인 동작방법이다. 그러나 환경이 바뀌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바둑을 잘 두는 알파고에게 이제부터 자율주행차를 운전하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인간이 인공지능보다 우월한 점은 의식이 있다는 점이다. 즉 알아차리는 의식이 있기 때문에 바둑을 두다가도 자동차를 운전할 수가 있고, 환경이 바뀌면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
두뇌가 심장박동을 뛰게 하고 허파를 팽창하여 호흡하게 하는 동작은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프로그램된 대로 동작한다. 즉 프로그램된 대로 동작하는 경우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나지만, 프로그램된 대로 동작하지 않으려면 의식해야 한다. 깊은 잠을 잘 때는 의식이 없다. 그러나 깨어 있을 때는 의식이 있다. 뇌과학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론은, 의식은 두뇌 동작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깊은 잠을 잘 때와 같이 두뇌가 동작하지 않으면 의식이 없다. 알아차림도 없다.
늙어 죽으면 두뇌가 망가지고, 두뇌가 망가지면 깊은 잠을 잘 때와 같이 의식이 없다. 영원히 알아차림도 없다. 영원히 깊은 잠의 상태가 된다.
지구가 편편하다는 생각에 머물면 배를 타고 먼 항해를 나갈 수가 없다. 벼락을 맞으면 전생에 죄가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수준에 머물면 고층건물을 지을 수가 없다. 전생, 천당, 조상과 제사, 하느님, 천벌 등의 개념 속에 갇히면 그 사고의 세계를 벗어날 수가 없다. 나는 종교가 인간이 만들어낸 스토리라고 생각한다. 종교의 틀 속에 갇혀 살고 싶지는 않다.
종교도 장점과 단점이 있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상대를 대접하라”는 황금율이나 믿음 등은 좋은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따르지 않으면 된다.
장수시대가 되니 치매 상태로 10~20년 사는 것도 이제 흔한 일이 되고 있다. 많은 신경망이 망가진 상태에서 남은 신경망이 돌보는 보호자의 마음을 뒤짚어놓는 신경망만 남아 있다면 자신도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요양원에 가야 할 것이고, 간병살인으로 자식도 망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살아 있을 때 착한 치매 신경망만 남을 수 있도록 살 필요가 있고, 그것이 황금율을 지키는 것이다.
살다보면 좋을 때도 있지만, 힘들 때도 있게 마련이다. 힘들 때도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은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종교의 그런 장점은 취하면 되고, 천당 장사나 종교를 빙자한 극우 파시스트 같은 세계에 갇혀 산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는가?
뇌과학에서 보면 “나(self)”라는 것도 두뇌가 생존과 번식을 위해 만든 것이고, 가변적인 것이다. 늙어 두뇌가 많이 망가지면 “나”라는 것도 없어진다. 즉 “영원불변의 나라는 것은 없다”는 무아 사상도 틀린 것이 아니다. “나”라는 것에도 갇히지 않고,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으면서, 순간순간 알아차리면 언제나 평온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