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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각

JungTae Lee 0

인간의 신경망처럼 만들어 빅데이타로 훈련한 ChatGPT의 열기가 대단하다. 많은 부분에서 인간에게 큰 도움을 주지만, 거짓말도 정말 그를 듯하게 한다.  강원도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태백시의 숙소를 추천해 달라고 하니, 얼토당토 안한 이야기를  정말 그럴 듯하게 한다.
인간도 비슷하다. 간질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좌우 뇌를 연결하는 뇌량을 절단한 공로로 로저 스페리는 노벨상을 받았고, 그의 제자 가즈니가는 이런 분리뇌 환자를 두고 많은 실험을 하였다. 그 결과 인간 두뇌도 이야기를 그를 듯하게 지어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어진 신경망의 범위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말, 행동과 마찬가지로 감정과 생각도 두뇌의 동작이다. 두뇌 동작에서 대부분은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이렇게 프로그램된 대로 동작하면 평소에는 에너지 효율적으로 동작하여 효과적이지만 환경이 변하면 문제가 생긴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의식이 생긴 것 같다. 의식의 목적은 신경망의 동작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상태를 알아차려야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아차림은 주관적 경험이다. 주관적 경험이 되려면 알아차리는 자, “나(Self)”가 있어야 한다. 이렇게 두뇌는 “나”라는 것을 만들고, 마치 불변의 “나”라는 것이 있는 것처럼 만든다. 그러나 “나”라는 것은 불변의 것이 아니고 가변적이다. 환상지 환자는 내 몸의 일부가 나의 것이 아니라고 하고, 코타르 증후군 환자는 내가 없다고 한다. 두뇌 동작에 이상이 생기면, “나”라는 것이 변하는 것이다.
두뇌는 생존과 번식을 위해 동작하는데, 이를 위해 감정이 생긴다. 나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면 즐겁고 불리하면 고통스러운 것이다.
일단 “나”라는 것이 만들어지면 고통은 피할 수 없다. 환경은 언제나 나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만 없기 때문이다.
지인 중에서 폐암으로 돌아가신 분이 있는데, 죽기 직전에 너무 고통스러워서 평소 그 분의 인품과는 판이하게, 폭언을 하고 난폭해져서 억제대를 한 상태에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 평소 인품처럼 생을 마쳤으면 좋으련만, 유감스럽게도 일반병원에서는 마약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고통을 제어할 수가 없었고, 생명에 위협을 느끼면 두뇌는 살려고 발버둥치게 마련이다. 생존과 번식에 위협을 느끼니 신경망은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다.
그런데 70이 넘은 “이 나이에도 내 두뇌가 생존과 번식을 위해 동작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고, 생존과 번식에 불리하다고 두뇌가 그렇게 동작하는 것일 뿐인데…
두뇌가 “나”라는 것을 만들어내는 한 고통은 피할 수 없다. 이런 두뇌 프로그램에서 벗어나려면 알아차려야 한다. 고통스러우면 알아차려라. 내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고, 생존과 번식에 불리하다고 두뇌가 그렇게 동작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단지  신경망의 동작임을 알아차려라. 내가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다. 두뇌의 동작에서 어떤 조건이 맞으면 “나”라는 것이 있는 것처럼 생각이 드는 것이다.
두뇌는 생존과 번식을 위해 “나”라는 것을 만드는데, 늙은 노인의 두뇌도 생존과 번식을 위해 동작해야 하나? “나”라는 것이 고통의 원인인데, “나”라는 것에 갇혀 휘둘리며 살아야 하나? 프로그램된 대로 “나”라는 것에 갇히지 말고, 순간순간 두뇌의 동작임을 알아차리면 언제나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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