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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에 대하여

JungTae Lee 0

내가 어렸을 때에는 모두가 큰집에 모여 함께 제사를 지내고, 동네 어른들을 찾아가서 새배 인사를 올렸다. 직장을 찾아 도시로 떠난 한 후에 고향의 어른들을 찾아 새배 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그집 큰 며느리의 인상이 아주 좋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친정에 가야하는데 손님들이 자꾸 인사하러 찾아 오니 울쌍이 된 것이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인사도 마음대로 다니면 안되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릴 때는 “제사를 잘 모셔야 그 집안이 잘 된다”고 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제사가 다가오면 제기(제사용 놋그릇이나 목기)를 닦고, 전을 부치고, 탕을 준비하였다. “조율이시”에 맞추어 제상을 차리고, 일진에 맞추어 “축과 지방”을 작성하였다. 집안에 따라서는 “도포와 두건”을 준비하기도 하고, 제사 음식은 음복(복을 주는 음식)이라 하여 동네 집집마다 다니며 나누어 주었다. 멧밥 한 그릇은 장롱 선반에 올려 두고, 들짐승이 먹을 수 있도록 각종 제사 음식을 대문옆에 놓아두기도 했다.
1970년대 말에 인터넷 도입을 위하여 미국, 영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 우리나라는 먹을 것도 부족한 시대인지라 선진국을 보니 너무나 잘 살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분명 제사를 아주 잘 지낼 것으로 생각하고 “너희들은 제사를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니 제사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제사도 지내지 않는 쌍놈(?)들이 이렇게 잘 사는 것이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동안 배운 것과 너무나 달라 아주 혼란스러웠다. 여러 고민 끝에 내 혼자 내린 결론은, 제사란 “우리들끼리 약속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옛날에는 씨족이 모여 동네를 형성하고, 여자는 시집가면 “여필종부”라 하여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시댁의 풍속에 따르는 것이 미덕이었다. 그런데 이제 직장을 따라 도시로 떠났고, 여자도 대부분 최고 학부를 나와 직장에 다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하루 전에 놋그릇과 목기(나무 그릇)를 닦고, 전을 부치고, 탕을 마련해야 할까? 좋은 그릇이 없던 시대에는 놋그릇이 최고급이라 그럴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 질 좋은 그릇이 부지기수인데 옛날 풍습을 따라야할까? 음식이 풍족하여 과식으로 암에 걸리는 시대인데, 지방덩어리인 전을 부쳐 먹어야 하고, 음복이라 하여 이웃에 음식을 나누고, 들짐승이 먹도록 대문앞에 음식을 내놓아야할까? 직장의 휴가가 하루 이틀 정도인데 줄줄이 인사를 오는 손님을 맞느라 친정에도 오지 못하는 딸이 좋은 며느리라고 자랑스러워 해야 할까?
시대는 급변하고 있다. 고향에 가면 친척도 없고 사촌도 결혼식장에서나 겨우 인사를 나누는 시대이다. 선진국이 되어 음식은 풍족하고, 냉장고 등 각종 전자제품은 음식을 오래토록 보관할 수도 있다. 과식으로 고혈압, 당뇨와 같은 성인병이 문제가 되고 있고, 암 때문에 지방과 육식이 문제로 언급되고 있다. 세상이 바뀌었는데 옛날 풍습을 고집하는 것은 후유증을 낳을 수 밖에 없다.
뇌과학이 발전되어 인간 두뇌의 동작이 많이 밝혀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이 하는 일을 대부분 할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가 의식의 유무라고 할 수 있는데, 인공지능은 의식을 가질 수 없다. 인공지능은 프로그램된 대로만 동작할 수 있는데, 이는 환경이 바뀌면 적응할 수 없다. 반면에 인간은 의식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도 적응할 수가 있다.
잠을 자거나 마취를 시키면 의식이 없다. 즉 의식은 두뇌 동작에서 나오고 죽어서 두뇌가 망가지면 잠을 잘 때와 같이 의식이 없다. 즉 죽은 후에는 의식이 없기 때문에 알아차림이 없다. 알아차림이 없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귀신이나 사후세계가 있을 수 있나? 정확히 이야기하면 사후 세계는 알 수가 없다. 귀신이나 임사체험 이야기는 모두 두뇌가 만든 이야기일 뿐이고, 누구도 사후세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다시 말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따라서 죽은 귀신을 전제로 한 제사는 고정된 형식이 정해진 불변의 규칙이 아니고 공동체가 합의하여 바꾸면 된다.
나는 제사도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내가 존재하고, 풍성한 먹거리를 준 조상님께 고마운 마음을 지니면서, 공동체 구성원들이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된다. 현대식 음식을 사용해도 되고, 현대식 생활에 맞추어 격식을 바꾸어도 된다.  구성원 누구에게 고통이 되면 합의하여 바꾸면 된다. 특정 형식에 갇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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