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활동을 할 때 돌보던 부자 할머니가 있었다. 하루는 병원에 가니 목이 말라 물을 좀 달라고 소리치고 있어도 아무도 거떨떠보지 않고 있었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 전담 간병인이 있었지만, 그 간병인도 못들은 척 하고 있었다. 하나 있는 아들이 병문안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성질이 까다로운 할머니를 뒷바라지 하기 힘드니 못들은 척 하고 있은 것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본인이 움직일 수 없을 경우에는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다. 자식이 안오면 간병인도 알고, 평소 까탈스러운 습관대로 살면 간병인도 근처에 오지 않는다.
우리 두뇌는 생존과 번식을 목표로 동작한다. 자기 자식은 번식을 위해 돌보지만 부모를 돌보게 하려면 교육을 시켜야 한다. 어릴 때 부모가 효도하는 모습을 빅데이터로 자식을 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초급 바둑 기보로 훈련한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겨주기를 바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인간이라면 교육시키지 않아도 자식은 돌보지만, 부모를 돌보게 하려면 어릴 때부터 솔선수범하여 교육시켜야 한다. 며느리와 아들이 그렇게 훈련되어 있지 않다면, 늙어 요양원에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요양보호사는 대부분 자신이 늙으면 자신이 일하는 요양원에 오지 않아야지 하고 생각한다고 한다. 날만 새면 대문밖에 나가 아들 오기를 기다리는 할머니도 있고, 이런 할머니를 힐난 하다가 말다툼이 벌어지면 빰을 때리고 가버려도 맞고 있을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못 움직이면 별 수가 있겠는가? 요양원은 걸을 수만 있어도 왕인 사회인데~~~.
노인을 모시는 것은 힘든 일이다. 육체적으로도 고달프지만, 특히 정신적으로 더 힘든 일이다. 노인의 고집을 꺾으려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괜히 있겠는가?
삼성의료원 나덕렬교수의 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하루는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는 치매 할머니를 회진하다가, 간호사와 “570+740” 같은 대화를 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먼저 “1310” 하고 맞추는 것이었다. 하도 이상해서 비슷한 문제를 반복해 보니 자식도 몰라보는 할머니가 산수 문제는 척척 맞추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면회 온 딸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니 할머니가 평생 슈퍼를 하셨다고 했다. 늙어 치매라는 태풍을 만나면 많은 신경망이 사라지지만, 평소 많이 사용하던 신경망은 남아 있는 것이다. 태풍이 불면 대부분의 등산로는 끊어지지만, 사람이 많이 다녀 반들반들한 등산로는 남아있는 것처럼~~~.
나덕렬교수 책에는 착한 치매 이야기도 나오는데, 한 치매 할머니는 밥을 드리면 고맙게 잡수시고 “감사합니다” 하고, 모든 일에 착한 아기 같아서 모시는 며느리가 자기도 늙어 저런 시어머니같이 되고 싶다고 했다.
늙어 두뇌가 퇴화되면 평소 많이 사용한 습관만 남는다. 부자로 살면서 갑질한 습관만 남아 있는데, 거동이 불편하여 남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도 갑질하면 좋아할 사람이 있겠는가?
사람은 언젠가 늙어죽게 마련이다. 언젠가는 거동이 뷸편하여 남의 도움 없이는 살기 어려운 시간이 올 수도 있다. 요사이 같이 핵가족 사회에서 자식에게 이런 시기를 맡기기 어려운 시대로 가고 있다. 그러면 요양원에 가서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고, 장수 사회가 되다 보니 이런 시기가 아주 길어지고 있다. 이런 시기에 미운털이 밖히지 않고 행복하게 생을 마무리하려면, 착한 치매 노인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평소에 상대를 배려하고 매사에 감사하는 습관을 길러야한다. 그래야 노후가 비참하지 않고 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