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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갔으면 하는 길

JungTae Lee 0

우리는 죽기 직전에 평생 의료비를 쓴다. 왜 그렇게 죽어야 하나?

죽음이 임박하면 우리는 살려고 발버둥 친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죽는 과정에서 평생 의료비의 대부분을 쓴다. 살다가 암이라도 걸리면 온갖 조사를 다 하고, 살려고 야단법석을 피운다. 중풍이 걸리면 반신불수가 된 상태에서 하루라도 더 살려고 발버둥친다. 그러다가 자식에게 크나큰 부담을 안기고 결국은 간다. 결국은 죽는데 온갖 검사를 하고, 살려고 야단법석을 떨어야 할까?

늙으면 자주 잊어먹게 되고, 눈은 침침해진다. 이빨은 빠지고, 소화는 잘 안 되고, 소변은 자주 마렵다. 대변은 해도 시원하지 않고, 무릎은 아프고, 손발이 시리기도 하다. 물건을 두고도 어디 두었는지 모를 때 “내가 왜 이런가”하는 한탄 소리가 절로 나온다.  

늙으면 아프기 마련이다. 60~70년을 사용하였으니 여기저기 고장이 생기게 마련이다. 눈이 침침해지면 “대충 보라고 그런가 보다” 하며 넘기면 된다. 이빨이 빠지거나 소화가 안 되면 “이제 좀 적게 먹어라”는가 보다 생각하고 먹는 양을 줄이면 된다. 그리고 평소에 이빨이 빠지지 않게 잇몸 마사지를 해주어 관리를 잘 해야 한다. 잇몸에 냄새라도 나면 주위 사람이 싫어하니 혓바닥을 청소해 주고, 손발이 저리면 요가를 해서 혈액순환이 잘되도록 하면 된다. 당뇨나 고혈압이 있으면 미리 대비하여 많이 걷도록 하며, 걷다가 무릎이 아프면 급한 일도 없는데 쉬었다가 가면 된다. 

늙으면 잠이 준다. 그러면 일어나 책을 읽거나 전자책을 들으면 되고, 물건을 어디 두었는지 기억나지 않으면 “이제 좀 잊어버리라”는가 보다 생각하고 걱정거리를 줄이면 된다. 늙으면 힘이 없어 넘어지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넘어져 허리를 다치거나 고관절에 골절이라도 입으면 고치기 어려우니 환경을 넘어지지 않게 바꾸고 조심해서 움직이면 된다. 

사망원인 중에 가장 큰 것이 암이라고 한다. 늙으면 암에 걸리더라도 빨리 진행되지 않는다. 초기를 제외하고는 암을 고치려 하기 보다는 통증을 제어하면서 암과 같이 살겠다는 자세로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투병하다가 남은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남기고 가는 것보다는 평소처럼 살면서 아름다운 추억거리를 남기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몸에 병이 와서 망가지는 것은 어느 정도 불편을 감수하며 살면 되지만 두뇌가 망가지면 차원이 다른 이야기가 된다. 혹시 치매에 걸리면 주위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줄지 모르니 걸리더라도 “착한 치매”에 걸리도록 평소 “예”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도록 연습해야겠다.

뇌경색이나 중풍이 오면 급히 응급실에 갈 수 있도록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둘 필요가 있고, 어느 시점을 넘으면 연명의료 행위를 하지 않도록 미리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여 언제나 지니고 다니도록 한다. 죽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산 것도 아닌 상태에서 요양병원에서 생명유지 장치에 의지하여 나라에 큰 부담을 주고 가족에게 큰 고통을 안기고 떠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은 참 바쁘게 돌아간다. 부모들은 자식에게 좀 더 좋은 교육, 나아가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하여 돈을 버느라 정신없이 살아간다. 늙은 부모가 여기저기 아프다거나 곁에서 돌봐주어야 한다면 자식에게 엄청난 고통이다. 그래서 부부가 같이 살면 자식에게 기대지 않고 서로 의지하고 도우면서 살면 된다. 그러다 한 사람을 먼저 보내고 혼자 남을 때, 혼자서 살 수 있으면 혼자서 살면 된다.

대부분 죽을 때가 되면 병원에 실려 가서 평생 의료비를 쓴다. 이는 자식에게도 큰 부담이지만 국가에도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다. 일본의 경우 노인 요양비로 지출되는 비용이 국방비를 넘어섰다고 한다. 의식도 몽롱한 상태로 죽는 과정에 왜 이리 큰 비용을 치러야 하나? 결국은 많은 사람에게 고통만 남기고 죽는데…

노화로 오는 퇴화는 유지보수를 잘 하면서 고쳐가며 살면 된다. 그러다 암에 걸리거나 낙상, 중풍 등으로 혼자 사는 것이 불가능해지면 고치려 하지 말고 조용히 눈을 감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다. 사전의료의향서는 위급한 상황에서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조력사가 허용되었으면 했는데, 허용된 국가에서도 조건이 까다롭다고 한다. 특히 어떤 의사가 죽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주사를 놓아주고 싶겠는가? 농담삼아 하는 이야기지만, 영국에서 평생 노인의학을 전공한 데이비드 제럿의 말대로 “추운 겨울에 독한 위스키 한병 들고 산으로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죽은 후에는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장기를 기증하거나 아니면 의과대학생들이 실습하도록 시신은 기증했으면 좋겠다. 코로나로 본의 아니게 가족들만 모여 부모 장례식을 치른 친구는 그런 장례식이 참 좋더라고 한다. 장례식장에 나열된 화환 행렬을 보면 참 부자연스럽고, 고인도 모르면서 밥상을 앞에 두고 웃고 떠드는 문상객의 풍경도 참 낯설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의 장례식은 치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운하다면 평생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참석한 조촐한 전송 파티 정도가 좋지 않을까? 그리고 나중에 화장하여 뼈를 돌려 받으면 내가 마련해 둔 산소에 비석 하나 세우면 된다. 가능하다면 그 비석에 다음과 같이 새겨주었으면 좋겠다. “인터넷으로 놀다가, 뇌에 파묻혀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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