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에 경북 영주에 있는 무섬마을을 방문할 때의 일이다. 마침 대궐같은 양반집에서 김장을 하고 있었는데, 나이 많은 아낙네가 혼자서 많은 배추를 씻고 있었다. 그 때 “요사이 처녀들이 저런 대궐같은 집에 시집가고 싶어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옆사람에게 물어보니 가지 않겠다고 했다.
내가 어릴 때 누나들이 시집갈 때 선택의 가장 큰 기준이 “양반인가 상놈인가” 하는 것이었다. 즉 천방지축과 같이 상놈이면 아무리 부자집이라도 시집 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요사이 이런 기준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양반 상놈까지는 따지지 않더라도 아직 옛날 관습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많이 간소화 되었지만 옛날처럼 관혼상제를 삶의 중요한 가치관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옛날처럼 제사를 지내고, 의복을 갖추고, 장례식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선택은 자유이지만 급변하는 세상을 고려해 볼 때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의 딸이 시집가서 엄마처럼 고생하며 살기를 원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엄마도 직장에 나가 일하면서 자식도 키워야하고 제사도 모두 지내야 하고 관습을 다 지킬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내 딸은 그렇게 살지 않기를 바라면서 며느리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면 말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아들 내외는 맞벌이 부부로 요사이처럼 애들을 유치원에 보낼 수 없으면 초비상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며느리가 며칠간 직장에 안나가도 되어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데, 코로나19 사태가 오래가지 않기만을 기원하며 살고 있다. 이런 며느리에게 제사를 꼬박꼬박 지내라 하고, 옛날처럼 관혼상제를 지켜야 한다고 하면 아들네는 분란이 끊임없을 것이다. 아들내외는 교회에 나간다. 그래서 우리 부부가 죽으면 제사를 지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제상, 목기, 촛대는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옛날처럼 자손대대로 부모와 한집에 산다면 모르나, 요사이는 자식들이 대부분 부모와 다른 아파트에 산다. 그러다가 부모가 돌아가시면 유품 정리할 시간도 없는 자식들은 통장이나 귀중품은 챙겨 가겠지만, 제상, 목기, 촛대 등은 어떻게 처리할까? 아마 유품정리사에게 전화하여 쓰레기로 처분할 것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유독 대구경북 지역에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신천지라는 원인이 있었지만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이 지역은 유독 보수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역대 투표결과를 보더라도 보수적인 성향을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안동을 위시한 지역에 양반이 많고 그 지역을 가 보아도 옛날에는 대궐같은 부자집이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근대사에 와서도 박정희 대통령을 위시하여 많은 대통령을 배출한 지역이니 자부심도 있을 것이다. 주위의 지인들 이야기를 들어 보아도 안동을 위시한 대구경북지역은 보수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무섬마을에서 대궐같은 부잣집에 시집갈 사람이 많지 않은 시대이다. 전통을 유지해 온 물품들이 유품정리사에게 쓰레기로 처리되어야 할 처지인데, 옛날의 영광에 취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