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의 이야기다. 미국에 사는 손녀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의 일이다. 사위의 실수로 손녀가 조금 다쳐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아동학대로 경찰에 신고하여 곤욕을 치렀다. 검사라는 인간은 무조건 우리를 범죄자로 취급을 하였고, 변호사라는 인간은 돈에만 관심이 있지 우리를 돕는데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지금도 그 때 일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재판에서 배심원단의 무죄 평결로 없는 일로 되었지만, 유죄로 나왔다면 한 가정이 위기에 처할 형편이었다. 사위는 직장을 잃고 감옥에 가야할 형편이고, 아이는 아동학대를 피한다는 명분으로 고아원이나 전전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이제 다 자라 애교를 부리는 손녀를 보고 있을 때면 문득 그 때 일이 생각나 소름이 끼친다.
그 때 의사도 백인이었고, 검사도 백인이었으며, 변호사도 백인이었다. 이들은 아시안계를 그저 그렇게 보는 것 같았다. 그 때 경험으로 볼 때, 의사나, 판검사, 의사들의 우월감이 얼마나 큰 죄악을 만들 수 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의사는 친절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의사는 우월감에 젖어, 의사가 말하면 들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똑같은 증상으로 다른 의사의 진단을 받으면 완전히 반대로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의사의 이야기가 모두 같은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환자도 공부를 해야 한다. 요사이 인터넷에 자료는 얼마든지 있다. 진짜와 가짜가 썪여 있어서 옳은 정보를 찾아내기 어려워서 그렇지, 정보는 많다. 그래서 환자도 공부를 많이 하면 문제를 파악할 수 있고 해결책이 눈에 보인다. 의사만 알고 있는 시대는 지났다는 이야기다.
의사는 환자가 안심하고 병을 고칠 수 있도록 믿음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친절하지 않는 의사는 믿지 않고, 그 사람의 이야기는 듣지도 않는다. 미국의 그 의사처럼 백인의 우월감에 젖은 인간이 얼마나 큰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검사나 판검사,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그동안은 검사가 사회의 정의를 지키는 정의의 사도처럼 생각하였지만 간첩조작사건이나 유서 조작 사건 등, 그동안 일어난 법조인들의 오만한 사건을 볼 때 이제 이들의 갑질을 그냥 둘 수 없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이들도 견제의 대상이 되어야 하기에 공수처를 설치한 것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이제 우월감에 젖어 나오는 갑질을 허용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흑인에 비해 백인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갑질도 바로 잡아야겠지만, 한 민족 내에서도 사회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갑질도 허용될 수 없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먼저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겸손한 자세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