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끼의 식사기금 활동을 하면서 보니, 아프리카에는 내일 먹을 양식이 없는 어린 아이는 다반사고, 항생제 한 알이면 목숨을 살릴 수 있은 어린 생명도 감당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이들에게 양식과 약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으로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아프리카가 못 사는 것은 분쟁과 부폐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헐 벗고 병든 곳에는 전쟁이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생산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초기 노예는 포로들이었으나, 다음으로 이웃 부족을 납치하여 노예로 팔고, 나중에는 친척, 친구를 납치하여 노예로 팔았다. 그러다 보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기가 필요하고, 노예로 번 돈으로 무기를 구입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지금은 노예 대신에 금광, 자원으로 대치되었을 뿐 지금도 그런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한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면 이웃 나라는 기회를 잡는다. 우리는 베트남 전쟁으로 경제부흥의 기회를 잡았고, 일본은 한국전쟁으로 2차대전 패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어느 일본 관리는 “한국에 전쟁이 나면 대박”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들이 한국의 평화를 원할까?
아프리카 같은 지옥을 피하려면 이완용같이 일본에 빌붙어서라도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갑질 인간들을 경계해야 한다.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자주 본다. 이들을 경계해야 한다. 이완용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은 기회가 주어지면 언제나 이완용같이 될 사람들이다. 초등학생이 노인 운전사에게 “태어나지 말아야할 인간”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나, 교통사고를 일으키고 돈으로 해결하려는 인간 등, 이들은 갑질이 몸에 밴 사람들이다.
사람은 신경망으로 살고, 90% 이상이 신경망에 프로그램된 대로 산다. 갑질이 몸에 밴( 습관화된) 사람들은 그런 신경망으로 산다. 자신의 이익에만 눈이 먼 갑질 인간들이 모인 곳에는 아프리카처럼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얼마전에 지인의 초청으로 아난티코브에 갔는데,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초호화 시설은 차치하고라도 회원이 아니면 접근 금지란다. 회원들은 급이 다르니 서민들은 감히 근처에 오지말라는 식이다. 그런데 서민들은 그기에 좀 끼여들려고 안달이다. “나도 갑질하며 살았으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다”는 식이다.
갑질이 몸에 밴 인간들은, 어려움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다시 어려운 시기가 오면 오직 자기만 살겠다고 나설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두뇌가 갑질로 프로그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6.25 전쟁과 같은 비극을 피하려면 이들을 경계해야 한다. 그들은 어려운 처지가 되면 무슨 일이든 할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전쟁의 가난과 질병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다. 아파트가 파괴되고 피난가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보라. 우리도 하루 아침에 그들과 같은 난민의 신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