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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부모님이 죽어서 슬플까?

JungTae Lee 0

아는 지인이 미국에 살고 있는데,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암에 걸려 “오늘 내일” 하고 있단다. 귀국해도 격리되어야 하고 병원 면회도 쉽지 않아 많이 힘들어한다고 한다. 딸은 미국에 살고 아들은 의사로 결혼하여 따로 살고, 부모님 두 분만 살다가 아빠가 암에 걸려 엄마가 간호하고 있단다. 상황이 우리집과 비슷하여 남의 집 일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저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해야할지를 한번 생각해 보았다.  

먼저 내가 암에 걸려 몸에 퍼졌다고 하면 암을 제거하려 치료하기보다 암과 같이 살겠다. 이것은 내가 호스피스 활동을 하면서 터득한 지혜다. 수술하고 암투병하다 죽어가는 무수한 사람들을 간호하면서, 저렇게는 삶을 마무리하지 않아야지 하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다. 암과 같이 살다가 통증으로 견기기 힘들면 통증을 관리하면서 살면 된다. 늙으면 암이 급격히 진행되지 않는다. 암과 함께 평소처럼 살면 된다.  

큰 매형이 암으로 돌아가셨다. 서울의 유명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다. 그 과정을 간호한 누나는 진저리를 낸다. 이해가 간다.  내가 호스피스하면서 겪은 일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누워있는 환자는 족창이 생기기 마련이고 불편하여 돌려 눕혀 달라고 해서 돌려 눕혀주면 또 불편하다고 짜증이다. 이래도 불평이고 저래도 짜증이니, 간호하는 사람은 전문가가 아니면 진저리가 난다. 그러다 속절없이 가는데, 그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 의술이 살리는데 촞점을 맞추는 치료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막상 암으로 투병중인 사람에게 이 이야기는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프기 전에 평소에 이 이야기를 해 두는 것이다.

인간은 결국 죽게 마련이다. 90이 되어 죽으면 성공이고 70에 죽으면 실패인가? 나는 그 이야기에 동의할 수가 없다.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고, 언제 죽음이 닥쳐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된다. 

우리는 아빠가 병들거나 죽어서 슬프다고 하는데 이 말이 진짜일까?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은 아빠가 죽어서 슬픈 것이 아니라, 두뇌가 죽었다는 신호를 받고 이 신호에 따라 눈물이 나고 슬픔을 느끼는 것이다.

아주 좋아하는 친구가 외국을 여행 중에 죽었다고 치자.  그런데 이 소식을 모르는 나는 슬픔이 없다. 죽음 자체가 슬픔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신호)이 두뇌 신경망에 전달되고, 이 신호를 받은 두뇌가 슬픔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신경망이 없으면 슬픔도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지금처럼 살아도 된다. 아빠가 죽으면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다가, 한 3년 지나면 좀 나아지면서 살아도 된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그렇게 살 필요가 없다. 아빠가 죽어서 슬픈 것이 아니고, 그 소리를 듣고 두뇌에 슬픔으로 느끼는 신경망이 있어 그런 것이다. 그리고 이 신경망은 한 3년 지나면 좀 완화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살 것이 무엇이 있는가? 세상 만사는 변하게 마련이고, 늙으면 아빠가 죽게 마련인데, “그런 소식을 듣고 슬프하는 신경망이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면 된다.

세상 만사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변하고 흘러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병들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병들면 보고 싶고 죽으면 슬프다. 그러다 조금 지나면 털고 일어나 평소처럼 살면된다. 그 속에 갇혀 계속 슬퍼하거나 보고 싶어하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보고 싶어하고 슬퍼하는 신경망이 너무 강화되어 있으면 그 속에 갇히게 되고, 그것이 새로운 고통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나의 두뇌에 그런 신경망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그 신경망에 갇혀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그 신경망을 반복해서 계속 돌릴 것이 아니라, “나에게 이런 신경망이 있구나”하는 알아차림이 있어야 한다. 알아차리고 그 속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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