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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없는 것이 행복이다.

JungTae Lee 0

불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에는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가 있다. 제행무상이란 “이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 라는 것이고, 이것은 우리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다음으로 제법무아인데, “이 세상에는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 라는 이야기다. 여기 내가 있는데 왜 “나”란 것이 없다고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내 두뇌에 프로그램된 대로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한다. 두뇌 프로그램이 몸을 제어하고, “나”라는 인간을 규정한다. 그런데 이 두뇌 프로그램이 영원히 변치 않고 그대로 이면 “나는 이런 사람이다” 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두뇌 프로그램이 변한다면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할 만한 것이 없어진다.

우리는 평소에 프로그램된 대로, 습관대로 살지만, 알아차리고 바꾸면 바꿀 수 있다. 프로그램된 대로 반응하는 것에서 벗어나면, “나”라는 것을 규정한 것에서 벗어난다. 따라서 신경망의 프로그램으로 “나”라는 것을 규정할 수 없다.

우리는 원시 밀림의 환경에서 진화하면서 생존을 위해 “나”라는 도구를 만들었다. 내가 없으면 “나”라는 생명체가 어떻게 지금까지 생존하고, 종족을 보존하여 왔겠는가? “나”라는 것을 만들고, 이것이 생존하여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나”라는 것은 생존을 위한 도구이며, 가변적인 것이다. 즉 불변의 “나”라고 할만한 것은 없다.

일체개고는 모든 것이 고통이라는 의미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살아 남을 수가 없다. 진화하면서 살아남은 모든 것은 생존을 보장받는 대신에 고통이 따른다. 생존하기 위한 모든 행위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의미다. 우리가 평소에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생존을 위해 아주 정상적인 상태다. 살아있지 않는 것은 고통이 없다.

고통과 같은 감정은 두뇌의 변연계에서 처리된다. 변연계는 “나”라는 것의 생존에 불리하면 고통으로 이 사실을 알린다. 그런데 “나”라는 것이 동작하지 않으면 변연계가 조용하고, 이 상태에서는 고통이 없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고통이 따르는데, “나”라는 것이 없고 오직 알아차림에만 머물면 고통이 없다. 이것이 행복이다.

행복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 쟁취하는 그 무엇이 아니고, 고통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는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면 행복하고, 권력을 잡으면 행복하고, 명예를 얻으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렇게 얻어지는 것은 쾌락이고, 일시적인 것이다. 부자가 되었다고 그 뒤부터 계속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며, 권력과 명예도 마찬가지다. 이런 것들은 일시적으로 쾌락을 가져 오지만, 또 다시 고통으로 빠지는 윤회를 반복할 수 밖에 없다.

두뇌가 “나”라는 것을 만들고, 환경이 나의 생존에 유리하면 즐겁지만 불리하면 괴로움을 가져 온다. “나”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두뇌의 변연계는 환경에 따라 즐거웠다 괴로웠다를 반복하게 된다.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가 조용하면 어떨까? 괴로움이 없는 상태다. 그저 세상이 평온하다. “나”라는 것이 없음을 깨우치고, “나”라는 것에 갇히지 않으면, 환경이 어떻게 변해도 변연계는 조용하다. 그것이 행복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그 속에는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 “나”라는 것에 갇혀 있으면 괴로울 수 밖에 없다. “나”라는 것에 갇혀있지 않고, 오직 알아차림에만 머물면, 언제나 평온하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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