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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없으면 재대로 알기 어렵다.

JungTae Lee 0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평생 대학에서 지내다 정년퇴임하는 교수들 중에서 정년퇴임 후 시골로 내려가서 농사를 지으며 전원생활을 했으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막상 정년퇴임을 하고 시골로 갔다가는 다시 도시로 돌아와 매일 당구장에서 소일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시골로 내려가 농작물은 쉽게 기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해보니 언제 씨를 뿌려야 하고, 언제 거름을 주어야 하며, 농약은 언제 뿌리는지 알 수가 없다. 더구나 잡초는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는데 초여름 더운 날씨에 잡초를 뽑으려 하니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다. 평생 농사일이라고 해 본 경험이 없고 공부만 한 인생인데, 늙어 농사를 지으려니 엄두가 나지 않고, 포기하고 도시로 돌아 오니 막상 뚜렷이 할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등산을 가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당구로 소일하는 것이다. 농사일도 경험이 없으면 저절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젊었을 때 나는 노인들이 아프다고 하면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안다고 생각했다. 노인들이 “눈이 침침하다” 하면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안다고 생각했고, 무릎이 아프다고 하면 그런 것이 어떤 것인지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늙어 눈이 침침하고 무릎이 아프니 그것은 젊었을 때 아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내가 젊을 때 생각했던 그런 아픔이 아니었다. 내가 늙어 경험해 보지도 않은 일을 안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우리는 뉴스에 어떤 기사가 나오면 순간적으로 반응한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보면 내가 잘못 판단했음을 뉘우칠 때가 많다. 내게 그 뉴스분야의 경험이 없다면 재대로 이해하여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다. 즉 공주처럼 자랐고, 결혼해서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없다면 세월호로 아이를 잃은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알더라도 이론적이고 피상적으로 알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상대와 대화를 할 때에도 내 진심은 그것이 아닌데 상대가 오해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특히 부부간의 대화에서 그런 경우가 많은데, 남자인 내가 여자가 되어 본 경험이 없는데 어떻게 마누라의 심정을 재대로 알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알아도 대충 어림짐작으로 아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 재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것으로 착각하여 결정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다. 즉 재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내멋대로 판단하여 결정하고 말과 행동을 함으로써 고통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우리는 오감을 통해 세상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두뇌 신경망을 통해 이 신호를 처리하여 결정하고 말과 행동으로 실행하며 기억으로 남긴다. 이 때 경험을 통해 신경망을 만들고(기억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신경망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다. 그런데 경험을 통해 신경망을 만들어 두었으면 세상을 재대로 해석하고 반응할 수 있는데 경험이 없으면 재대로 해석할 신경망이 없으므로 올바르게 인식할 수 없고 재대로 대응할 수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경험이 없으면서도 한평생을 살아오면서 다양한 분야의 신경망을 형성했으므로, 어떤 분야이든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평생 공부를 하여 대학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였다면 농사일은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도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거나 대충하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념퇴임을 하고 시골로 내려가서 전원생활을 꿈꾸고 있지만 막상 시골생활과 농촌일에 부딪히면 첩첩산중인 것이다. 

우리 두뇌는 이렇게 잘못 동작하지만 이 사실을 알아차리기 힘든다. 우리 두뇌는 인지  부조화를 해결하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상반되는 상황에서 판단해야할 경우에는 결국 하나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고 인지 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합리화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기가 모른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지금 자기 합리화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래서 어려움에 처하게 되고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내가 경험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내 두뇌에 그에 대한 신경망이 빈약하고 그런 신경망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면 고통이 따르는 것이다. 경험이 없으면 모른다고 생각하고 겸손하게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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