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하고 가는데 옆 자동차가 신호도 없이 갑자기 끼어들면 화가 난다. 입에서 “나쁜 자식”이란 욕이 나오고, 응징을 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내가 바쁘면 무례하게 끼어들면서 “바빠서 그렇다” 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나의 잘못에 대해서는 환경 탓으로 넘기고, 상대의 잘못에 대해서는 내면, 즉 인간 자체가 나빠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상대도 나처럼 바빠서 갑자기 끼어들었는지도 모르는데, 상대는 인간이 나빠서, 나는 바쁜 일이 생겨서, 끼어든 것으로 생각한다. 사실은 내가 상대의 상황을 잘 모른다는 것이 답이고, 사실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섯불리 반응을 보이면 실수를 범하기 쉽다. 잘 모를 때는 환경을 원인으로 생각하여 “바빠서 그렇겠지”하고 생각하는 것이 보다 지혜로운 방법이다.
전화를 건다. 상대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 그러면 우리는 “저 인간이 나에게 이럴 수 있어?” 하고 짜증이 난다. 그런데 상대가 마누라와 싸우고 있는데 전화를 받았다면 반응이 신통찮을 수 있다. 이 경우도 사실은 상대의 상황을 잘 모른다. 그래서 환경의 탓으로 생각하고 “무슨 사연이 있겠지!” 하고 넘어가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다.
우리 두뇌는 알고 반응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상대가 처해 있는 환경을 잘 모르면서 “나쁜 인간이라서 그렇다”라고 생각하고, “나에게 이럴 수 있어!”하고 화가 난다. 평생을 함께 살아 온 마누라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라. 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아는 것을 적어보라”고 하면 몇 줄 적지 못한다. 그것도 상대에게 “내가 당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적은 것”이라고 보여주면, 많은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한다.
우리 두뇌는 다 알고 있는 것 같이 반응하지만, 사실은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두뇌는 자원(기억 용량, 처리 속도, 에너지 소비량 등)에 한계가 있는데, 그 한계 속에서 이 세상에 생존과 번식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다 보니 아는 것처럼 반응하는것이 생존에 유리할 때가 많다. 먹을 거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마을 단위의 소규모 사회에서 고립되면 생존 자체가 위험해지는 원시 환경에서 우리 두뇌는 진화하였다. 반면에 이제는 먹을거리가 풍부하고, 사회 규모가 엄청나게 큰 현대 환경에서 원시환경에서 진화한 두뇌는 오동작 하는 경우가 많다. 프로그램된 대로, 아는 것처럼 행동하면 오동작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을 졸업하고 연구소에 취직을 해 들어가니 선배들이 소장님 결재를 받으러 가기전에 비서실에 연락하여 소장님 심기를 체크하고 결재를 받으러 갔다. 나는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니, 나도 그런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어떤 경우엔 허술하게 준비해 들어가도 칭찬을 받으면서 결재를 얻어 나왔지만, 어떤 날에는 완벽하게 준비해 갔는데 혼줄이 나는 경우도 있었다. 소장님도 인간인지라 그날 심기에 따라 반응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나중에 나도 아래 사람에게 심기에 따라 반응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대부분 프로그램된 대로, 무의식적으로, 습관대로 반응하는데, 환경을 파악하고 대응하거나, 내가 상대를 잘 모르니 이를 인정하고 지혜롭게 반응해야 한다.
우리는 잘 모르는 것은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에 적합하게 대응을 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다. 차가 끼어들면 욕하고 있는 나의 자동반응을 알아차리고, “바쁜가 봐” 하고 반응하는 것이 지혜로운 대응이다. 전화에서 상대의 반응이 시큰둥하면,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하는 생각이 나는 자동반응을 알아차리고, “무슨 사연이 있겠지” 하고 반응하는 것이 지혜로운 반응이다. 원시 두뇌로 프로그램된 대로 자동반응하지 않아야 한다. 모르면 “모른잖아” 하고 인정해야 한다. 아는 것처럼 자동으로 반응하는 두뇌 신경망의 동작을 알아차리고, 현대 사회에 적합한 반응으로 대치해야 한다. 그래야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평온하게 살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