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친구가 췌장암 선고를 받았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생각하니 두렵고, 지난 일을 생각하니 후회가 된다고 한다. 이런저런 생각에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남은 가족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고 한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죽음이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데.
이모님이 90인데 위암으로 고생하신다고 한다. 전화해 보니 온 가족이 저기압이다. 더구나 본인은 이 사실을 모른다니 위로 말씀을 드리기도 어렵다. 행복한 가정이었는데 죽음의 먹구름이 이 가정을 덮은 것 같다.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면 행복하게 살 수가 없다.
착하게 살아오신 이웃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양로원에 계신지가 5년이 넘어 주위 사람들이 안 죽어 걱정이라고 했다. 이 경우는 죽어야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본인은 죽지 않으려고 하는데 주위에서는 지쳐 이제 좀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주위 사람은 고통이 끝났으면 하고 본인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알고 보면 각자의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이다.
행복도 생존의 도구다.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것은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모두가 행복하게 살려고 나름대로 난리다. 돈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돈을 버는 데 혈안이고 본인도 모르게 힘을 과시하려고 혈안이다. 그런데 왜 남의 인정을 받아야 하지? 그만큼 생존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인정을 받는 것이 생존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인플루언스가 돈이 되고 새로운 권력이 되고 있다. 무슨 짓을 하든 폴로워가 많으면 돈이 되니 거기에 매달리고 있다. 인플루언스가 되어야 힘을 자랑할 수 있으니 새로운 출세 방법이 되고 있다. 이것도 행복하게 살려고 그러고,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려 하고 있다.
행복하려면 지금 여기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힘이 있는 것처럼 해야 한다. 그것은 권력을 쥐는 것일 수도 있고, 집이 어리어리하고, 옷을 잘 입고, 좋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돈을 잘 쓰고, 이 모든 것이 힘을 과시하는 행위이고, 힘이 있음을 인정받으면 생존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개인이 아무리 애써도 한계가 있다. 아무리 모든 것을 갖추더라도 암에 걸리면 행복할 수가 없다. 죽음이 모든 것을 덮기 때문이다.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죽는다. 몇 년 더 사나 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생존에 목을 매야 하나? 더구나 70~80이 다 된 이 나이에 몇 년을 더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두뇌 프로그램대로 살아야 하나? 생존의 문제를 극복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없다.
생존에 매달리는 두뇌 프로그램을 보라. 알아차려라. 알아차림에 머물러라. 모든 것은 두뇌가 만든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