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배를 타고 가는데 어떤 배가 와서 부딪혔다. 화가 나서 나가보니 빈 배였다. 불같이 나던 화는 사라지고 빈 배를 피해간다.
빈 배는 파도가 치는 대로 흘러간다. 즉 자연의 법칙에 따라 프로그램된 대로 흘러간다. 사람이 없어 방향을 바꿀 수가 없다. 여기에는 의도가 없기 때문에 화가 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불같이 났던 화가 사라지는 것이다.
상대의 말이나 행동에 화가 난다. 그런데 이것도 알고 보면 빈 배가 파도에 떠밀려 와서 부딪히는 경우와 같다. 빈 배가 그저 프로그램된 대로 흘러온 것과 같이, 사람도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프로그램된 대로 반응한다. 무의식적으로, 습관대로, 프로그램된 대로 하는 행동이나 말에는 의도가 없다. 그저 프로그램된 대로 반응할 뿐이다. 그런데 나는 상대의 의도가 들어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화가 나는 것이다.
인간의 두뇌를 fMRI로 측정해 보면 순간순간 무수한 신경세포가 동작하고 있다. 이 신경세포의 동작이 느낌이고, 생각이고, 행동과 말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러한 신경세포의 동작 중에서 의식하는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무의식적으로, 프로그램된 대로 동작한다. 미국 제럴드 잘트먼 교수는, 인간 두뇌의 동작 중에서 95% 이상이 무의식적으로 동작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인간은 작화(말을 지어내는 것)의 천재다. 자기 정체성에 맞지 않는 생각이나 말과 행동을 하면 정신 분열이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자기 정체성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자동 반응한 것에 대해 그럴듯하게 말을 지어낸다는 의미다. 두뇌에 프로그램된 대로 반응하고, 그 반응에 맞게 그럴듯하게 말을 지어낸다.
빈 배, 인간도 대부분 빈 배일 뿐이다. 의도 없이 프로그램된 대로 움직이는 빈 배에 화를 내지 않듯이, 95% 이상 프로그램된 대로 반응하는 인간에게도 화를 낼 필요가 없다. 상대방도 그저 프로그램된 대로, 습관처럼 반응하고, 말을 지어낼 뿐인데, 따지고, 화를 낼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저 상대방도 빈 배임을 알아차리면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