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으면 어린애가 되어 간다고 한다. 어린애를 돌보기 힘들듯이 노인을 돌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어린애는 그래도 귀여운 구석이 있고 미래가 있어 참을 수 있지만, 노인이 퇴행적 행동을 보이면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노인을 돌보는 것이 가장 힘든 점은 자신의 이런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당연한 듯이 행동한다는 점이다.
얼마 전에 감기 예방접종을 11월 5일 12시에 예약하고, “금요일이니 수영 갔다가 접종 후 농장으로 가기 위해 그 시간으로 예약했다”라고 집사람에게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집사람은 11월 5일 동창 모임을 중복 예약하고 예방접종은 11월 4일로 알고 있어서 5일로 약속했다고 했다. 내가 불만을 표시하자, “감기 예약을 변경하면 되는데 왜 그렇게 불만이 많은가”라고 했다. 예약을 변경하려면 예약번호를 알아야 하는데 예약번호를 찾으려고 몇 시간을 헤맸다.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감퇴하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자기중심적으로 이기적인 행동을 하고,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어지니 노인을 상대하기 어려워진다. 가장 큰 문제는 자기 자신의 이런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노인이 되면 몸이 퇴화한다. 기억이 희미해지고, 눈이 침침해진다. 소화가 잘 안 되고, 허리가 아파 굽어지고, 무릎이 아파 잘 걷지를 못한다. 몸에 병이 생기면 통증이 오고, 대부분 현상은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두뇌가 퇴화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늙으면 몸도 퇴화하지만, 두뇌도 퇴화한다. 해마가 퇴화하여 기억력이 옛날 같지 않음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이 밖에도 대상회의 퇴화로 Context Switching 이 잘 안되어 고집이 세진다. 그래서 노인의 고집을 꺾으려 하지 말라고 한다. 전전두엽 퇴화로 제어기능이 약화하여 잘 참지를 못한다. 거울세포의 퇴화로 공감 능력이 감퇴하고, 시각중추가 퇴화하여 눈이 침침해지고, 청각중추가 퇴화하여 잘 듣지 못한다. 미각중추가 퇴화하여 음식 맛을 잘 맞추지 못하고 짜게 만들기도 하며, 냄새를 잘 맡지 못해서 주위가 지저분해진다. 운동중추가 퇴화하여 행동이 느려지고, 언어중추가 퇴화하여서 할 말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두뇌가 위축되고 작아져서 두뇌의 기본 기능인 생존과 번식에 집착하게 된다. 그래서 늙으면 어린애가 되고, 두뇌가 퇴화하여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고치기 어렵다. 두뇌에 해당 기능이 없어졌는데 어떻게 고쳐지겠는가?
노인 모시기에 가장 어려운 점은 자신이 이렇다는 사실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니 이웃에 들릴 정도로 TV를 크게 켜두고 있고, 냄새를 잘 맡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니 노인에게 다가가면 냄새가 나는 것이다. 노인들이 모이면 이기적으로 자기 생각만 하고, 종족 보존에 집착하여 손자 손녀 자랑을 늘어놓으면서 공감 능력이 떨어져 자랑을 듣고 있는 상대의 기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퇴화한 두뇌에 해당 기능이 저하되었거나 없어져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두뇌에 담당하는 기능이 없는데 어떻게 고치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노인을 돌보는 사람은 힘들고, 너무 심해지면 간병살인이라는 최악의 상태도 일어난다 점이다. 그래서 노인들은 몸이 아픈 것보다 두뇌의 퇴화를 걱정해야 한다. 두뇌가 퇴화하지 않도록 꾸준히 노력해야 하고, 자기 자신의 이런 상태를 알아차리는 노력을 부단히 해야 한다.
그런데 노인들은 자신의 상태를 알아채지 못하고 습관대로 행동하는 데서 불행의 씨앗이 튼다. 부엌에 밥을 올려두고 잠시 안방에 갈 일이 있어 자리를 비운다고 치자. 그동안 밥을 올려둔 것을 잊고 다른 일을 하다가 밥 타는 냄새를 맡고 놀라 부엌으로 뛰어간다. 그런데 이 정도는 다행이다. 후각이 퇴화하여 냄새에도 둔하게 되면 타는 냄새도 맞지 못하니 불이 나는 것도 모르게 된다. 언론에서 간혹 보도되는데 아파트에 불이 나서 온 동네를 태워 노인이 구속되기도 한다. 이것은 신이 분노하여 벌을 준 것도 아니고 단지 노인이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습관대로 행동하는 데서 시작되는 비극이다.
이런 비극을 피하려면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습관을 바꾸어야 한다. 자기가 잘 잊어먹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불에 음식을 올려두면 부엌을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거나, 부득이 자리를 떠야 한다면 잠깐이라도 불을 꺼야 한다. 그런데 노인들은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이런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도 않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엄청난 비극을 자초하기도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노인들은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려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건강하게 살려면 자신의 두뇌가 퇴화하였음을 알아차리고 습관을 바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꼰대 노파나 노인으로 살다가 요양원에서 자식의 한숨 소리를 들으면서 고통 속에 삶을 마무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