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인식하는 대상과 감정, 말, 행동 등에는 해당하는 신경망이 있다.
내가 인식하는 대상에는 해당하는 신경망이 있다. 아파트, 자동차, 비행기, 도로, 하늘, 공간이나 장소, 심지어 무한대에 대해서도 해당하는 신경망이 있다. 그리고 이들 대상에는 특징을 나타내는 신경망이 있는데, 이것은 호/불호, 중립의 특성을 나타내는 신경망이다. 특정 대상이 나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면 좋아하고, 불리하면 싫어한다. 그러나 하늘과 같은 대상은 중립이다.
나에게 이런 신경망이 있어서 인식할 수 있고, 호/불호/중립의 감정이 생긴다. 이런 신경망은 2차원으로 구현되지만 우리는 대상을 3차원으로 인식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인식은 내가 내린 해석이며, 신경망이 없으면 인식할 수도 없다. 내가 아는 세상이 실상이 아니고 나의 주관적 해석이며, 사람마다 감정이 다를 수 있고, 해석이 다를 수 있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에는 그에 따른 신경망이 있다. 내가 욕설을 하거나 화를 냈다면 그에 대한 신경망이 있다. 이런 신경망은 오랜 세월을 두고 형성되었거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말과 행동은 대부분 나의 생존과 번식에 대한 호/불호의 감정에 기반을 두고 동작한다. 이런 신경망이 DNA를 통해 구현되었거나 경험을 통해 만들어졌는데, 만들어진 배경이 현대사회와 판이하게 다를 수 있다. 원시 밀림에는 언제나 양식이 모자랐지만, 현대사회는 먹고 사는 문제가 원시 밀림처럼 심각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 두뇌는 밀림처럼 동작한다. 끊임없이 먹으려 하고, 끊임없이 쌓아 두려고 욕심을 부린다.
나란 것도 두뇌 신경망이 만든 것이다. 따라서 나란 것도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고 가변적이다. 이 몸을 나라고 인식할 수도 있고, 이 몸에 속하는 팔다리가 나의 것이 아니라고 인식할 수도 있다. 심지어 공감 회로가 아주 발달하면 상대의 고통이 나의 고통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이런 사람에게는 이기적인 행동이 이타적인 행동이 되기도 한다.
내가 인식하는 대상, 느끼는 감정, 나의 말과 행동, 모두가 내 두뇌에서 나온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 내가 인식하고, 느끼고, 말하고, 행동한 것이 내가 한 것이 아니고 내 두뇌 신경망의 반응이다. 이런 신경망이 적절하게 반응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잘못 인식하고 반응할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내 두뇌에 이런 신경망이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나라는 것 자체도 가변적인데, 나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내 두뇌의 동작에 집착할 필요가 무엇이 있는가? 특히 70이 넘은 이 나이에 생존과 번식에 매달릴 필요가 어디 있는가? 두뇌의 동작에 갇힐 필요도 없고, 집착할 필요는 더구나 없다.
의식도 두뇌가 만든 것이다. 두뇌가 동작할 때는 의식이 있지만, 신경망이 망가지면 의식도 없다. 나란 것에 갇힐 필요도 없지만, 나라고 할 만한 것도 없다. 언제나 내 신경망의 동작을 알아차리고 그것에 갇혀 휘둘릴 필요가 없다. 언제나 열린 알아차림에 머물면 언제나 평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