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중풍으로 좌측 수족이 불편하여 잘 걷지 못한다. 다리도 다리지만 가장 힘든 것이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라고 한다. 측은하게 보는 눈빛을 마주 대하기 어렵고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하면 우울해진다고 한다. 전화하면 “짜증스럽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만나 식사를 하러 자동차를 타고 가는데 신호 위반하는 사람들을 지적하면서 짜증스럽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였다. 이런 우울 상태를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것을 보면, 자신도 짜증을 내면서 우울하다는 것을 자각하는 모양이다.
우리는 자신의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 상대의 잘못을 보면 짜증이 나고,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그 사람 때문에 짜증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짜증스러운 것도 자신의 신경망이 그렇게 동작해서 그런 것이다. 이런 신경의 연결이 미미하거나 없으면 짜증이 날 리도 없다. 신호를 지키지 않는 상대방이 있어도 “무슨 바쁜 사연이 있겠지”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는 상대가 나의 생존에 대단한 위협이 되면 상응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지만, 신호 위반한 상대를 볼 때마다 짜증을 낸다면 짜증이 안 날 때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요사이는 배달 오토바이가 휘젓고 다니는데, 이 모든 경우에 짜증이 나면, 내가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도 없고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짜증이 나거나 우울하면 내 신경망을 보라. 배달 오토바이가 신호를 위반하고 막무가내로 달리는 것을 보고 짜증이 나면, 내 두뇌에 그런 상황에서 짜증이 나고 우울해지는 신경망이 있음을 알아차려라. 알아차리면 변화의 공간이 생긴다. 적어도 습관적으로 반응하고 프로그램된 대로 짜증을 내는 것에서 벗어날 틈을 만들 수 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그러나 밀림과 같이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생존과 번식에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 두뇌는 그런 밀림의 시대에 만들어져 현대사회를 살고 있다. 밀림 같은 절체절명의 위협은 거의 없는데 수시로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밀림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대로 반응하지 말고, 현대 환경에 맞게 반응해야 한다. 그러면 먼저 내 두뇌 신경망이 어떻게 프로그램되어 있는지 알아야 한다.
힘들거나 부정적인 감정이 들면 상대를 보지 말고 내 두뇌 신경망을 보라. 주어진 환경에서 내 두뇌 신경망이 적절히 반응하는지 살펴보라. 생존에 위협이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경고음을 꽥꽥 울린다면 내 두뇌에 이런 신경망이 있구나 하고 알아차려라. 알아차려야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 대상을 보지 말고 두뇌를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