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죽음 이야기를 하면 아주 싫어한다. 그러다 준비 없이 죽으면 죽음보다 더 나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평소에 죽음을 멀리하다가 암이나 뇌졸증에 걸리거나 낙상을 당해 죽을 입장이 되면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간다.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를 꼽고, 고통 때문에 강력한 진통제로 정신줄을 놓고, 생명유지장치에 기대어,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상태로 하염없이 세월을 보내다가, 비몽사몽 상태에서 혼자서 죽는다. 이런 상태에서 평생 의료비를 대부분 쓰면서 자식들의 한숨은 깊어만 간다. 갑자기 당한 일이라 유언장도 없다. 자식들은 상속 문제로 법정에서 싸우다가 서로 원수가 된다. 세상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데, 정작 내 자식들을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죽음 이야기가 나오면 손사래를 친다.
사람들은 구구팔팔이삼사, 구십구 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앓다가 잠자듯이 집에서 죽었으면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이다. 사고사가 아니면 이삼일 앓다가 죽는 일은 생길 수가 없다. 노화는 점진적인 과정이고 하루아침에 생기는 일도 아니다. 나이가 들면 눈도 침침해지고, 무릎도 아프고, 고혈압, 당뇨 등으로 약만 늘어난다. 어떤 노인이 죽고 난 후 자식들이 약봉지를 모아보니 한 가마니가 되더라고 한다. 우리는 사전의료의향서를 준비해 두면 원하는 형태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33만 명의 작성자 중에서 725명만 원하는 형태로 삶을 마무리 했다고 한다. 노인이 위급하여 응급실에 실려 가는 순간 환자와 보호자의 선택권은 없어지고 연명치료에 들어간다. 산소호흡기를 달기는 쉽지만 떼는 것은 불가능하다. 살인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호스피스로 이런 경우를 무수히 보아왔기 때문에,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정신줄을 놓은 상태로 혼자서 죽고 싶지 않다. 집에서 고통 없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면서 죽고 싶다. 내가 죽은 후 자식들끼리 소원해지는 일이 절대 없었으면 하기에 미리 죽음을 대비하여 이 글을 적는다.
한림대 김현아 교수에 의하면 사람은 점진적으로 노화하여 3단계 과정을 거치면서 죽는다고 한다. 늙으면 기력이 쇠퇴하여 바깥출입이 어려운 단계에 이르게 되는데, 이 단계를 사회적 사망 단계라고 한다. 이 상황이 되면 나는 집에 머물면서 의식을 연구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살겠다. 그다음으로는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생물학적 죽음 상태에 이르게 되고, 마지막으로는 먹고 숨 쉬는 일도 자력으로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나는 생물학적 죽음 상태가 되면 더 이상 생명을 유지하고 싶지 않다. 침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똥오줌도 자력으로 해결할 수 없으면 곡기를 끊고 집에서 조용히 죽고 싶다. 병원에 싣고 가서 억지로 생명을 연장시켜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보내지 마라. 나는 자력으로 살 수 없으면 생을 마무리했으면 한다. 집에서 곡기를 끊고 조용히 죽겠다.
죽기 직전에 목구멍의 분비물을 해결하지 못해 가래 끓는 소리가 안타깝게 들리겠지만 절대 병원 응급실로 데려가면 안 된다. 가래가 끓는 것은 보호자가 생각하듯이 환자도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다. 응급실에서 산소호흡기를 꼽고 자발적 호흡을 억제하기 위해 강력한 진통제로 정신줄을 놓는 것보다는 백배 덜 고통스럽다. 절대 병원으로 데려가면 안 된다. 곁에서 지켜보지 못한 자식은 진행 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에 “왜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았나?, 왜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서 치료해 보지 않았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효자 게임을 하면 안 된다. 아빠인 내가 원하는 죽음이고, 아빠의 소원이기 때문에, 이 소원을 들어주기 바란다.
의사의 왕진이 안되는 현실에서 집에서 죽으면 사망진단서 발급 문제로 경찰 조사가 벌어지는 번거로움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생길 것에 미리 대비하여 이 글을 작성하고 공증을 받아둘 것이다. 침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생물학적 죽음 상태에서는 곡기를 끊고, 절대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은 본인 이정태의 선택이라는 점을 여기 분명히 밝혀 둔다.
우리는 죽음을 치료해야 할 병으로 생각하는데, 나는 치료해야 할 대상이 아니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거쳐 가야 할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노인이 늙어 보행이 어렵거나 음식의 맛이 없다거나 호흡이 가빠지고 목구멍에 가래가 끓으면 죽을 때가 다 되었다는 의미다. 이를 치료의 대상으로 보고, 심박 수, 산소포화도, 호흡수를 모니터링하기 위해 몸에 전극을 부착하거나, 무수한 검사를 한다. 늙으면 당연히 여기저기 문제가 생길 것이다. 검사하면 당연히 많은 문제점이 발견될 것이다. 그것을 병으로 보고 치료하고, 수액이나 약물 투여를 위해 정맥에 삽관하고, 동맥혈압을 측정하기 위해 동맥 삽관을 한다. 인공호흡이 필요하면 기도 삽관을 하는데, 이때 자발 호흡을 억제하기 위해 강력한 진통제를 투여하여 환자의 의식이 몽롱한 상태가 되도록 만들기도 한다. 신장 기능이 떨어지면 혈액 투석을 하고, 심장 기능이 저하되면 에크모를 설치하는데, 이때 두 개의 관을 꼽고 한쪽으로 정맥혈을 뽑아내서 산소를 공급한 후 동맥으로 산소포화가 된 혈액을 공급한다. 나는 이런 지옥 같은 검사나 치료를 받으면서 내 생을 인위적으로 연장하다가 마무리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임종 직전에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는 순간 이런 일이 벌어진다. 내가 작성해 둔 사전의료의향서도 이때는 의미가 없다. 임종의 순간이 오면 나에게 절대 심폐소생술을 하지 마라. 절대 각종 검사를 하지 마라. 절대 산소호흡기를 달지 마라. 절대 에크모를 사용하지 마라. 절대 호스로 영양공급을 하지 마라. 절대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보내지 말라. 완화의료로 통증만 줄여주면 된다. 그리고 곡기를 끊고 집에서 죽고 싶다.
낙상이나 뇌출혈, 혹은 뇌경색으로 침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생물학적 죽음 상태가 되어 똥오줌도 자력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 더 이상 검사나 치료를 하지 말라. 집에 데려와서 통증만 잡아주는 완화치료를 하면 된다. 곡기를 끊으면 더 이상 억지로 먹이려고 하지 마라. 늙으면 먹는 것도 싫어지니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늙으면 암으로 죽는 경우도 많다. 노인에게는 암도 죽는 과정의 하나다. 암의 초기라서 수술로 완전히 제거할 수 있으면 치료를 받겠지만, 전이되어 완치 확률이 50% 이하이면 수술이나 항암치료를 받지 않겠다. 암과 함께 살다가 죽겠다.
내가 중증 치매 진단을 받으면 생을 마무리하겠다. 정신이 왔다 갔다 하겠지만, 정신이 맑을 때 곡기를 끊고 생을 마무리했으면 한다. 이런 나의 뜻을 받아들여 주기 바란다. 절대 연명 치료를 하지 마라. 나는 죽음을 치료해야 할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거쳐 가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사랑한다. 혜인아, 용현아, 사랑한다. 영인아, 솔빈아, 그리고 손영순, 당신을 만난 것이 나의 행운이었다. 당신들을 만나 내 인생은 행복했다. 모두 사랑한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