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행동, 말, 감정, 생각 등은 모두 두뇌 신경망의 동작에 의해 이루어진다. 중풍으로 신경망이 손상되면 망가진 부분에 따라 장애가 온다. 두정엽의 운동중추가 망가지면 반신불수가 되고, 측두엽의 언어중추가 망가지면 말을 못 하게 된다. 망가지지는 않았더라도 잘못 프로그램되면 잘못된 행동, 잘못된 감정,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되고 인생이 그만큼 뒤틀리게 된다.
두뇌의 기본동작 프레임은 개체 생존과 종족 보존에 목적을 두고 있다. 두뇌는 언제나 생존과 번식을 가장 효율적으로 성취할 수 있도록 동작한다. 그래서 우리는 진화의 과정에서 살아남았고 지금 여기에 내가 존재한다.
뇌과학의 발달에 따라 두뇌의 동작 원리를 활용하는 기술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뇌의 동작을 모방한 인공지능이 우리 생활의 구석구석에 침투하고, 뇌의 동작 원리를 이용한 디지털 치료제, 뉴로마케팅도 등장하고 있다. 시상하부의 MPA 신경은 인간의 욕구를 활성화하는 신경인데, 이를 자극하면 물건을 사게 만들 수도 있다. 인간의 두뇌는 이렇게 프로그램된 대로 동작하면서 뒤에 가서 합리화한다. 즉 TV에서 유명인이 가진 물건의 광고를 보면 MPA 신경이 활성화되고, 구입한 후 필요해서 구입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렇게 신경망에 프로그램된 대로 살면 우리는 광고주에 조종당할 수 있고, 쉽게 사기를 당할 수도 있으며, 종으로 인생을 살게 된다.
지금 세상은 두뇌가 오랫동안 진화해 온 원시환경과 너무나 다르다. 언제나 식량이 모자랄 때는 많이 먹어 두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였지만, 음식이 풍부한 현대사회에서 두뇌에 프로그램된 대로 더 많이 먹어 두면 살이 찌고 병만 부를 뿐이다. 조금이라도 씨를 더 뿌려두어야 종족 보존의 확률이 높아지는 원시 밀림과 같이, 두뇌 프로그램된 대로 살았다가는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된다.
우리 두뇌는 가소성이 있다. 기본 프레임은 생존과 보존의 틀에 의해 동작하지만, 그 위에 새로운 신경망을 올릴 수 있다. 시상하부의 MPA 신경이 활성화되어 “저 물건을 사야 한다”라고 해도 전전두엽이 이를 억제할 수 있다. 전전두엽이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비싼데 실용성이 없어 살 필요가 없다”라고 판단하고 욕구를 억제할 수 있다.
놀랍게도 우리 신경망은 동작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것을 의식이라고 한다. 의식하면 프로그램된 대로 동작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동작할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 알아차리고, 새로운 신경망이 동작하도록 반복 연습하면 신경망의 동작을 바꿀 수 있다. 이는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으며, 이렇게 바꾸었을 때 우리의 삶은 한 차원 높아진다. 즉 두뇌에 프로그램된 대로 살면 종으로 살게 되어 삶이 고달프지만, 알아차리고 변화를 주면 자유스러워진다.
늙어 치매에 걸리면 자식을 기억 못 하기도 하지만, 남을 의심하기도 한다.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는 것도 힘든 일인데 돈을 가져간 도둑으로 의심받는 며느리는 죽을 맛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의심받는 것이 억울하여 항변하지만, 두뇌가 망가지면 남을 의심할 수도 있음을 아는 전문가들은 “죄송합니다. 갖다 둘께요”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치매 환자는 그 당시만 넘어가면 잊어버리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 내가 힘들 때는 내 신경망의 동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직장 상사나 동료를 생각할 때마다 짜증이 나면, 그 직장 상사나 동료 때문이 아니라 내 신경망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입장을 바꾸어 내가 그 사람의 입장에 서 보라. 그러면 변화의 공간이 생길 것이다.
남편이나 마누라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 사람을 보지 말고 상대의 두뇌를 보라. 자신의 신경망을 고치는 것도 정말 어려운데 내가 상대의 신경망을 어떻게 고치겠는가? 그 사람도 자기도 모르게 프로그램된 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배를 몰고 가는데 어떤 배가 와서 내 배에 부딪혔다. “어떤 미친 새끼가 이렇게 했나?” 하고 화가 머리까지 치밀어 나가 보니 그 배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다.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면 화가 나지만, 두뇌가 그렇게 프로그램되어서 그런 것임을 알면 많이 누그러진다.
억지를 부리는 아이를 보면 짜증이 난다. 그러나 아이는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전전두엽이 덜 발달하여 제어가 안 된 것이다. 좀 세월이 지나 신경망이 발달하면 다 해결될 문제들이다. 이때는 어떻게 아이 두뇌에 더 좋은 신경망을 만들어줄까 하고 고민해 볼 기회가 된다.
우리는 내가 세상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내가 아는 세상은 내 두뇌로 해석한 것이다. 해석하는 신경망이 다르면 세상을 다르게 인식한다. 상대는 나와 다르게 보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서 보수도 있고 진보도 있는 것이다.
나라는 것도 두뇌가 만든 것이고 가변적이다. 우리는 이 몸을 나라고 인식하지만, 고무 손을 나의 일부로 착각하기도 하고, 두뇌에 손상을 입으면 내 몸의 일부를 나로 인식하지 못하기도 한다. 내가 확장되면 자동차가 나의 일부로 착각되어 조그만 스크레치에 힘들어지기도 하고, 아파 죽어가는 아프리카 아이들이 나의 아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확장되면 확장된 나를 위한 이기적 행동도 이타적 행동이 되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고 지구온난화와 미 중 갈등은 새로운 시련으로 다가오고 있다. 두뇌에 프로그램된 대로 살아가면 엄청난 고통이 되겠지만, 고통을 가져오는 신경망을 알아차리고 변화에 맞게 신경망을 수정하면 자유스러워지고 극복 못 할 위기도 없다. 왜 프로그램된 대로만 살려고 하나? 사람만 보지 말고 그 사람의 두뇌를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