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 나는 나이 들어 아픈 것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노인들의 아픔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늙으면 눈이 침침해지고, 소리가 잘 안 들리고, 이가 빠져 음식을 잘 씹을 수 없고, 허리가 아파 잘 걷지 못하고, 무릎이 아프고, 발이 시린 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어머님이 양로원에서 밀가루를 관절염약으로 속아 수십만 원에 사 왔을 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이 든 지금 무릎이 아파 병원에 가도 고쳐지지 않고, 통증이 올 때 이 약만 먹으면 낫는다는 소리를 들으면 살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어머님의 행동이 백번 이해가 된다. 그때는 나이 들어 아파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해가 안 된 것이다.
치매 환자는 두뇌의 손상된 부위에 따라 여러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기억을 못 해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기도 하고, 귀신이 다녀갔다고 하기도 하며, 누가 내 돈을 훔쳐 갔다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치매 환자를 부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돈을 훔쳐 가지 않았는데 훔쳐 갔다고 모함을 받으면 죽을 맛이다. 그래서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하고, 이래서는 못 살겠다고 아우성을 친다. 그러나 치매 환자를 전문으로 다루어본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의심을 받으면 죄송하다고 하고 다음에 갔다 두겠다고 하면서 그냥 넘어가면 된다. 조금 지나면 다 잊어버리는데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가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치매 환자는 두뇌 신경망이 손상되어 나타난 현상일 뿐임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택배 신청을 하였는데, 저녁 7~9시 사이에 짊을 가지러 오겠다고 했다. 6시경에 귀가하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외출하였는데 오후 5시에 짐을 픽업하러 왔다. 그래서 미리 연락했으면 귀가해 있을 텐데, 연락도 주지 않고 갑자기 이렇게 나타나면 어떻게 하는가 하고 따지려고 집사람에게 전화를 바꾸어 달라고 했는데 바꾸어주지 않고 택배 짐을 대강 꾸려 부쳤다고 했다. 함께 외출한 딸이 화가 나 있는 나에게 “택배 아저씨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종일토록 전화할 여유도 없이 일하다가 조금 빨리 끝이 나서 픽업하러 왔는데, 그냥 짐을 주면 될 일이지!” 하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집사람도 전화를 바꾸면 일이 그르쳐질 것 같아 바꾸어주지 않았다고 했다. 땀을 콩죽같이 흘린 아저씨에게 시원한 물 한잔 대접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나는 저녁 늦게까지 힘에 부치게 배달을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아저씨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오감을 통해 들어온 신호를 자신의 신경망으로 처리하여 반응한다. 신경망이 없으면 상대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나에게 늙어본 경험이 없고, 치매 환자를 다루어본 경험이 없고, 종일 택배를 배달해 본 경험이 없으면 이러한 환경을 제대로 해석할 신경망이 없고, 상대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살다 보면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오해를 받아 억울함을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상대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해석할 신경망이 없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반응을 보이면 난감해질 것이다. 내가 세상일을 모두 경험하여 신경망을 갖추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이해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있는 신경망이 없어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런 일이 발생할 때 알아차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대가 이해되지 않으면 나에게 해석할 신경망이 없음을 알아차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