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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에도 갇히지 마라.

JungTae Lee 0

행복은 생존의 도구다. 지금 여기 주어진 환경이 나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면 즐겁고(행복하고), 불리하면 고통스럽거나 화가 난다.  내가 한 행동의 결과로 즐겁다면  생존에 유리하니 그런 행동을 반복하라는 의미고, 괴롭다면 그런 행동을 하지 말라는 의미다. 이런 두뇌 동작 메커니즘을 통해 인간은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나이 많은 노인에게도 이 생존과 번식의 두뇌 프로그램이 바람직할까? 70이 넘은 노인이 번식에 유리하다고 여러 여자 뒤를 졸졸 따라다니게 하는 두뇌의 동작이 바람직할까?  90이 넘은 노인이 암에 걸려 죽을지 모르니 수술도 하고 생존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행동일까? 암 치료하다가 통증 속에서 생을 마무리해도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는 두뇌 프로그램이 좋은 프로그램일까?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100% 다 죽었고, 100%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에도 말이다.

친척 중에 남부럽지 않게 행복하게 사시는 노부부가 있다. 두 분 모두 90이 넘으셨는데도 건강하게 사셨고 자식들도 걱정 없이 사는 편이어서 누가 봐도 행복한 가정이다. 그런데 올해 90이 넘은 부인이 암에 걸려 집안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 엄마가 죽게 되었으니 자식들도 좌불안석이고 모두가 침울하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면 누구나 초연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의 앞날을 생각해 본다.

우리 두뇌는 개체 생존과 종족 번식을 위해 최적화되어 있다. 90이 넘어도 생존과 번식에 위협이 닥치면 경종을 울리게 되어 있다. 그런데 번식능력도 없고 얼마 안 있어 100% 죽어야 하는데 여기에 매달려야 하나? 노인들이 안 죽어도 문제다. 안 죽고 노인만 득실거리는 사회가 유지되겠는가? 어차피 죽어야 하는데 개체 생존을 위해 동작하는 두뇌 프로그램대로 살아야 하나?

어째도 죽어야 하는데 두뇌에 프로그램된 대로 살려고 발버둥 치면서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두뇌 프로그램은 너무나 강렬해서 생명에 위협이 오면 인간은 누구나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평소에 연습이 필요하다. 죽음에 적응하는 연습을 통해 두뇌 프로그램을 바꾸어야 한다. 순간순간 알아차리고 알아차림에 머무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언제나 알아차림에 머물 수 있어야 늙어 병들고 죽음이 다가와도 평온하게 받아들일 수가 있다. 죽음에도 갇히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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