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린 지인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식을 알아보지도 못한다. 귀신이 다녀갔다고 하기도 하고, 때로는 모시고 있는 며느리에게 내 돈을 훔쳐 갔다고 의심하기도 한다. 다른 것은 그래도 넘어갈 수 있는데, 장롱 속에 넣어둔 돈을 훔쳐 갔다고 의심할 때에는 며느리로서 참 난감하다. 의심받는 것도 억울한데, 안 가져갔다고 항변해도 무용지물이다. 당해본 사람은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일이지만 해결책이 없다. 그런데 치매 환자를 다루는 전문가들은 이것이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지 두뇌가 퇴화하여 그렇게 동작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대꾸하지 않고, “죄송합니다. 다음에 가져다드릴게요” 하고 넘어가면 된다. 치매 환자는 두뇌가 퇴화하여 그렇게 말하고 행동한 것일 뿐이다.
페이스북에서 몇 년 전의 큰 손녀의 어린 시절 사진과 글이 올라와 온 가족이 빵 터진 적 있다. 지금은 젊잖고 시간이 나면 혼자서 책을 읽고 있을 정도로 성숙한 숙녀인데, 어릴 때 망나니 행동을 했다는 사실이 상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그 사진에 엄마가 다음과 같은 글을 첨부하였겠는가! “요즘 딱 **상태는, 1. 내가 본 거는 전부 내꺼다, 2. 니꺼라도 내가 원하면 내꺼다, 3. 한번 내꺼면 영원히 내꺼다. 하는 식이다.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어린 손녀는 단지 두뇌가 덜 자라 그렇게 행동했을 뿐이고, 성숙한 지금은 그런 시절이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요즈음 둘째 손녀가 꼭 이 수준인데, 큰 손녀를 생각해 보면 시간이 해결해 줄 것임을 알기에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다.
막내 손자는 언제나 엄마 곁에서만 잠이 들었는데, 어저께는 할머니 집에서 자겠다고 했다. 일요일 저녁이라 빨리 집에 가서, 엄마 아빠는 내일부터 출근해야 하고 막냇손자도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데, 할머니 집에서 안 가겠다고 떼를 써니 엄마 아빠는 참 난감하다. 그런데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런 행동도 두뇌가 그렇게 동작하기 때문이고, 엄마를 떠나 할머니 집에서 지내겠다는 것은 두뇌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의미다. 보는 관점에 따라 고집을 피우는 것일 수도 있고, “두뇌가 그만큼 성장했구나” 하고 대견해할 수도 있다.
사실 인간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고, 습관대로 산다. 어떤 행동을 하면 두뇌가 그렇게 프로그램되어 있다는 의미이고, 두뇌가 그렇게 동작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것을 두고, “네가 참아야지”, “어떻게 그렇게 행동할 수 있나?”, “그것이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하고 반응한다. 아직 안와전전두엽이 덜 성숙하여 참는 것이 안 되는 아이에게 “네가 참아야지” 하고 꾸중을 해 보아도 참을 수 있겠는가?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그런 말을 내뱉은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하고 원망해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단지 두뇌가 그렇게 동작한 것뿐인데•••
치매 환자를 두고 아마추어는 내가 돈을 훔치지 않았다고 항변하지만, 전문가는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어간다. 신경망이 덜 발달한 어린애를 두고 아마추어 엄마는 꾸중하고 교육을 하지만 노숙한 엄마는 두뇌가 그렇게 동작하고, 두뇌가 성숙해지면 해결될 문제임을 알기에 그냥 모른 채 넘어간다.
세상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마추어는 “어째 인간이 그럴 수 있는가?” 하고 따지지만, 프로는 무의식적으로 두뇌가 그렇게 동작한 것임을 알기에 너그럽게 넘어간다. 비바람이 몰아치면 비바람을 피하기는 하지만, 비바람이 왜 부는가 따지고 원망하지는 않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