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혀 살지 말라고 한다. 갇혀 산다는 것은 두뇌 신경망에 프로그램된 대로 산다는 의미다. 프로그램된 대로 살면 환경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할 수가 없다. 잘못 대응하니 갈등을 일으키고 괴롭게 된다. 그러니 갇혀 살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제사를 잘 지내야 집안이 흥한다고 한다. 여기에 갇혀 살면, 제사를 지내기 며칠 전부터 준비해야 한다. 목욕을 재개하고, 제수를 정성스럽게 준비하여 제사 음식을 마련하고, 제기를 끄집어내 닦고, 병풍의 먼지도 털어내고, 축과 지방을 작성해야 한다. 옛날 농사지은 시절에는 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가능한 일이지만, 매일 직장에 나가는 주부나 남편이 직장에 다녀와서 옛날식으로 준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내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세상에서 자란 나는 제사를 잘 지내야 집안이 흥하는 것이 진리인 줄 알았다. 잘 사는 나라에서는 당연히 제사를 아주 잘 지내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한 40년 전에 인터넷 도입을 위해 선진국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가난한 우리의 현실과 비교할 때 잘 사는 나라에서는 당연히 제사를 잘 지내는 줄 알았다. 그래서 이들에게 제사를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니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아주 큰 충격이었다. 내가 선진국을 여행하지 않았다면 제사에 대해 갇혀 살았을 것인데, 그 바깥으로 벗어나니 제사에 대해 아주 유연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아는 제사는 진리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끼리의 약속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얼마 전에 친구와 제주도를 여행했다. 친구는 요사이 청력이 약해진 것 같다고 했다. 어느 날 아침에 시끄러워 잠을 깼는데, 친구가 TV를 크게 켜두고 시청하고 있었다. 친구는 일부러 TV를 크게 켠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맞게 틀어두고 듣고 있었다. 자기 세계에 갇혀 있으니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TV 소리가 시끄러워 잠을 잘 수 없으니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친구와 번갈아 가면서 운전을 했다. 운전을 하지 않을 때는 조수석에 앉아 있으니 친구의 운전이 불안하였다. 위기상황에서 친구의 판단과 반응이 느린 것이 느껴졌다. 친구가 조수석에 앉아 내가 운전하는 모습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끼지만, 다른 사람이 보면 불안한 것이다. 자기 세계에 갇혀 있는 것이다.
병원에 가면 간혹 친절한 의사도 있지만, 대부분 의사는 불친절하다. 어느 대학병원 교수는 “의사는 병만 잘 고치면 되지 친절할 필요는 없다”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 몸은 두뇌가 제어하고 두뇌의 동작에 따라 반응한다. 그래서 나는 친절하지 않은 의사는 내 병을 고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의사들은 자기들은 엘리트이고 병만 고쳐주면 된다는 믿음에 갇혀 사는 것 같다. 말기 암 환자를 대하는 태도를 볼 때, 의사들이 환자의 관점에서 고민해 보는 면이 없는 것 같아 아쉬웠다. 의사들은 엘리트 의식에 갇혀 사는 것 같다.
판검사들도 비슷한 것 같다. 자기들은 고시에 걸린 엘리트층이고 정의를 수호하는 사도처럼 생각하는 것 같은데, 자기 식구들은 감싸면서 선택적 정의를 휘두르는 경우를 볼 때 “이건 아니올시다”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세상과 동떨어진 판결을 내리는 경우를 보면 기득권 사수에 갇혀 사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코로나 백신에 대한 최근의 언론 보도를 보면 언론도 기득권 수호에 갇혀 사는 것 같다. 옳고 그른 일로 판단하여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신들에게 유리할까 하는 점에 따라 기사를 찾고 만드는 것 같다. 기자들도 자기들 세상에 갇혀 사는 것 같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그들의 세상에 갇혀 사는 것 같다. 택배 차량을 아파트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자기 아이들이 저소득층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하기도 하며, 아파트 가격이 하락한다고 집단행동을 벌리기도 한다. 얼마 전에 돈이 좀 있는 친구와 동승한 적이 있는데, 티코 차량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돈이 그렇게 없나? 저런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이해가 안 된다” 하는 소리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일부 부자들도 그들의 세상에 갇혀 사는 것 같다.
이처럼 기득권층은 그들의 세상에 갇혀 살면서 자기들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은 내 두뇌로 해석한 것이다. 윤석열 사태에 대해서도 조국이 부도덕하다는 사람도 있고, 조국의 낙마를 목적으로 윤석열의 과잉수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식으로 수사하면 걸려들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나 하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다. 코로나 백신에 대해서도 부작용 때문에 맞으면 안 된다는 사람도 있고 맞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신경망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다.
두뇌의 신경망이 다르면 다르게 해석하고, 그에 따라 말하고, 행동한다. 나는 내 두뇌에 없는 신경망으로 세상을 볼 수 없다. 나는 내 두뇌 신경망이 만들 수 있는 세계에 갇혀 있다. 그러면서 그 속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산다.
갇혀 있는 사람은 자기가 특정 세계에 갇혀 있음을 알기 어렵다. 그래서 항상 내가 갇혀 있지 않은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언제나 다니던 길로만 가지 말고 새로 난 길이 없는지 살펴보고 그 길로도 가 보아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의 바깥은 어떤 세상인지 상상해 보고, 그렇게 생각하고, 판단하여 행동하면 어떨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의 바깥은 어떤 세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