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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가 잘 다투는 이유

JungTae Lee 0

손자가 할머니 집에 놀러 오면 거미집을 신통하게 잘 찾아낸다. 30년 가까이 된 아파트이다 보니 간혹 바퀴벌레도 나오고, 신식 아파트와 비교하면 불편한 점이 많다. 주차장도 엘리베이트와 바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 비가 오면 불편하고, 1층 공간에도 차가 다니기 때문에 아이들이 놀면 위험하다. 그래서 아이들이 이사하라고 하는데, 쉽지 않지만, 아파트는 오래되면 다른 곳으로 이사라도 갈 수 있으니 다행이다. 

얼마 전에 친구들이 모였는데, 모두가 한마디씩 아픈 이야기를 했다. 가만히 듣고만 있으니 “너는 아픈 곳이 없지?” 하고 물었다. “나도 눈이 침침하고, 이빨은 흔들리고, 무릎이 아프다”라고 하니 “너도 아픈가?” 하고 되물었다. 70년 이상 사용해온 몸인데 어찌 고장 난 곳이 없겠는가? 불편하고 아파도 잘 관리하며 사는 것이지. 이것은 병원에 가서 완전히 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파트처럼 오래되었다고 새것으로 바꿀 수도 없지 않은가.

노인들에게 물어보면 죽는 것보다 무서운 것이 치매라고 한다. 두뇌가 망가지면 인간으로서 역할을 할 수가 없고,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절로 나온다. 두뇌는 치매처럼 많이 망가지는 예도 있지만, 나이가 들면 본인도 모르게 조금씩 퇴화한다. 그리고 퇴화하는 정도에 따라 기억력이 감퇴하기도 하고, 행동이 둔해지기도 하고, 버럭 화를 내기도 하며, 엉터리 같은 어이없는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노인 부부를 가만히 살펴보면 잔소리가 많거나 다투는 경우가 많다.  남편이 무슨 행위를 하거나 말을 하면 부인이 핀잔을 주고, 서로 자기가 옳다고 다투기도 한다. 젊을 때는 금실이 좋았던 부부도 나이가 들면서 서로 티격태격한다.

나이가 들면 몸도 여기저기 아파져 오지만 두뇌도 퇴화한다. 두뇌가 퇴화하면 그에 따라 기능이 저하되거나 손실된다. 그래서 깜박 잊기도 하고, 행동이 둔해지기도 하며, 고집이 세어지고, 보수적이고, 이기적으로 된다.

문제는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데 있다. 친구와 여행 가서 새벽에 친구가 TV를 크게 켜서 놀라 잠이 깼다. 친구는 요사이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에게 맞춰 TV를 켰는데 다른 사람의 잠을 깨운 것이다. 친구는 자신이 TV를 크게 켰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늙으면 행동이 둔화하여 위급상황에 대응하는 능력이 저하되었는데, 자신은 이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안와전전두엽이 퇴화하여 화를 잘 내지만 자신은 이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반면에 상대의 단점은 쉽게 눈에 띈다. 크게 켜 둔 TV 소리는 정상적인 청력을 가진 사람은 너무 시끄러워 쉽게 인식할 수 있고, 노인 운전자 옆에 앉아 보면 위급상황에서 반응이 둔함을 쉽게 알 수 있다. 판단력이 흐려 실수를 하는 경우도 옆에서 지켜보면 쉽게 인식할 수 있고, 고집을 피우는 경우도 당해 보는 입장에서는 쉽게 알 수가 있다.

늙어서 두뇌가 퇴화하고 그에 따라 기능이 저하되면, 자신은 이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상대방은 쉽게 인식할 수 있다. 그래서 남편의 잘못은 부인이 쉽게 알 수 있어 잔소리가 많아지고, 부인의 잘못은 남편이 쉽게 인식할 수 있음으로 지적하게 되고, 다툼이 늘어나는 것이다.

늙으면 여기저기가 아프다. 60~70년 이상 사용해 온 몸인데 이제 고장이 날 때도 되었다. 고쳐지지도 않고 내가 왜 이런가 하고 한탄해 보았자 별 도움이 안 된다. 잘 관리하면서 살면 된다. 두뇌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퇴화하기 마련이고 기능이 저하되기 마련이다. “옛날에는 잘 기억하고 총기가 있었는데 왜 이런가?” 하고 따져 보아야 도움이 안 된다. 상대의 실수를 너그럽게 보아 넘기면서 관리하며 사는 것이 지혜다. 70이 넘으면 두뇌가 퇴화하면서 발생하는 상대의 실수를 너그럽게 보아 넘겨야 할 나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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