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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파더”를 보고

JungTae Lee 0

영화 “더 파더”를 보았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이를 간호하는 딸의 이야기다. 두뇌가 망가지면 나타나는 현상을 치매 환자의 시각에서 조명하고, 이를 간호하는 딸의 고충을 그린 영화다.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면서도 삶에 집착하는 치매 환자를 보면서, 풀지 못한 숙제를 가득 안고 돌아온 기분이다. 마음속으로,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해 본다. 치매에 걸려 의사결정 능력이 없어지면 그런 다짐도 무용지물이 되는데…

인간은 두뇌로 모든 것을 한다.  두뇌로 기억하고, 두뇌로 몸을 움직인다. 두뇌로 느끼고, 두뇌로 생각하고, 두뇌로 판단하고, 두뇌로 결정한다. 두뇌로 말을 하고, 두뇌로 이해한다.두뇌가 망가지면 망가진 신경세포가 맡은 역할이 사라진다. 행동이 둔해지기도 하고, 기억이 사라지기도 하며, 남을 의심하기도 한다. 생각이 논리적이지 못하고, 판단과 결정이 뒤죽박죽되기도 한다. 말을 잘 못 하거나 이해력이 떨어져 소통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심지어 저녁마다 잠을 안 자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어린애 같아지기도 한다.

기저핵의 퇴행으로 파킨슨병에 걸리면 행동이 둔해진다. 걸음걸이가 비틀거리고, 손을 떨기도 한다. 그러나 두뇌가 정상이면 몸에 오는 파킨슨병 정도는 차라리 축복에 속한다. 기억이 사라지면 조금 전의 일을 금시초문인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모른 체 하고, 판단력이 떨어져 패가망신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하며, 심하면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기도 한다. 때로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주위 사람들이 가져갔다고 의심하기도 한다. 한두 번 말이지, 매번 이렇게 도둑으로 의심받으면서 사는 것도 큰 고역이다.

위치를 파악하는 신경망이 망가지면 집을 찾지 못하여 산속에서 객사하기도 한다. 감정제어가 안 되면 어린애 같아지기도 하고, 밤에 잠을 안 자고 돌아다니면 간병하는 사람은 지옥이 된다. 그래서 일본의 경우, 밤마다 잠을 안 자고 돌아다니는 부인이나 부모를 목 졸라 죽이는 간병살인이 벌어지기도 한다. 폭력적인 사람은 짐승처럼 날뛰기 때문에 의자에 묶어두기도 한다. 그러다가 화재라도 나면 밀양에서 일어난 사고처럼 침대에 묶인 채 타 죽기도 하고…

이러한 사람을 돌보거나 함께 사는 것은 큰 고통이다. 그래서 요양원이나 전문가에게 맡기기도 한다. 보통 사람은 의심당하면 도둑이 아니라고 항변하거나 싸우게 되는데, 전문가는 두뇌가 망가져 나타난 현상임을 알기에 항변하거나 싸우는 대신에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양원에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다. 그때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인지” 원장님께 물어본 적이 있는데, “자기들끼리 싸우는 것”이라고 했다. 요양원에서는 걷지 못하는 정도가 되면 “걸어만 다녀도 왕”이다. 말로 싸우다 안 되면 뺨을 때리고 가 버리면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 경험으로,  “절대 요양원에 갈 정도가 되기 전에 마무리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장모님이 계신 요양원에 갈 때마다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고, 오직 먹는 것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보면 깊은 시름에 잠긴다. 고령화됨에 따라 이런 부모를 뒷바라지하는 가족들의 고통도 안타깝고, 일본의 경우 이에 드는 예산이 국방비를 초월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완치되어 퇴원하는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풀리지 않는 숙제를 안고 우선 “내가 저렇게 되지 않아야 할 텐데,  그러기 전에 마무리해야 할 텐데”, 하는 다짐을 해 본다. 의지도 무너지고 오직 생존에 매달리는 상태가 되기 전에 결행이 필요한데 그것이 쉽지 않다.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여 지니고 다니지만, 이것도 안전한 방법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조력사를 조사하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제도를 하루빨리 도입했으면 하지만, 어느 의사가 죽여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주사를 놓아주고 싶겠는가? 참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독한 위스키를 한 병 들고 추운 겨울에 깊은 산속을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농담삼아 주장해 보기도 한다.

두뇌가 망가지면 동물처럼 되는데, 동물처럼 되면 동물처럼 마무리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동물은 죽을 때 자식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다. 자생할 수 없으면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삶을 마무리한다. 인간도 두뇌가 망가져 동물 수준이 되면 동물처럼 한쪽 구석에 가서 생을 마무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자신의 두뇌에 갇혀 생각하기 때문에(인간이라는 생각에 갇혀 살기 때문에) 답을 찾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살아있는 동안에는 두뇌 상태가 온전하도록 유지하는 노력을 해야겠다. 그리고 “자신의 상태를 아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겠다. 내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고, 남을 의심할 수도 있음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옳다고 고집부리지 말고, 없어진 물건이 있으면 내가 남을 의심할 수도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알아차리면 변화의 희망이라도 보일 수 있고, 자식들이 겪을 고충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을 것이니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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