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TV 출연자가 사위를 볼 때 예비 사위에게 한 가지만 물어보았다고 했다. “자네, 효자인가?” 하고 물어보니 “아니”라고 해서 결혼을 승낙했다고 했다. 효를 신앙처럼 여기는 우리 사회에서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나 싶겠지만 나도 이 말에 공감이 갔다.
우리 두뇌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동작한다. 신경망이 만들어지면 대부분은 프로그램된 대로 반응하고 의식되는 범위에서 작화하여 합리화한다. 즉 가로등 아래 열쇠 찾기를 하면서 습관대로 산다. 그래서 신경망의 형성과정이 중요하고 육아 환경이 중요한 것이다. 초보 기보로 아무리 훈련해도 이세돌을 이기는 알파고를 만들 수 없다. 좋은 신경망을 만들려면 그에 맞는 육아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손자 손녀가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며느리를 구박하는 바보짓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식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래서 자식에게 좋은 교육을 하고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다행히 자식이 공부를 잘해서 판검사, 의사, 교수가 되고 부자가 되면 행복한가? 판검사, 의사, 교수도 거의 프로그램된 대로 반응하고 습관대로 산다. 이들이 자란 환경에서 엄마가 매일 스트레스를 받고 걱정하고 살았다면 이들도 부모를 닮아 그렇게 살 가능성이 크다. 성공이나 재산과 관계없이 습관적으로 그렇게 살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손자 손녀가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우선 손자 손녀의 엄마가 행복해야 한다.
옛날처럼 한집에 같이 산다면 손자 손녀도 중요하지만 늙어 병든 부모를 팽개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효를 강조하였지만 요사이는 거의 분가해서 산다. 그런데 남편이 자기 할 일은 하지 않고 효자라서 부모 말만 따라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다행히 며느리가 성인군자라 그런 환경에서도 행복하다면 모르겠지만 아니면 손자 손녀가 불행하도록 비는 짓이나 마찬가지다.
분가해서 사는 요즘 세상에서는 효자보다 중요한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래서 사위에게 효자인가 물어보고 아니라고 하는 말에 결혼을 승낙했다는 말에 공감한 것이다. 사위에게만 “효자보다 가정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효자보다 며느리에게 잘해서 행복하게 살고 손자 손녀가 그런 환경에서 행복하게 자라 주었으면 한다.
사실 생각은 이렇게 하지만 막상 아들이 엄마보다 며느리 편을 들면 마음이 편치 않다. 서운한 마음이 들 때마다 알아차리고 “효자보다는 행복한 부모”가 먼저라는 주문을 외운다. 이렇게 연습을 하다 보면 어떤 경우에도 평온한 마음이 들 것이다. 그것이 손자 손녀를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