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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미래

JungTae Lee 0

샌프란시스코에는 “똥 지도(Poop Map)”와 “똥 순찰대(Poop Patrol)”가 있다. 시내 곳곳에 똥이 쌓여 있으니 어디를 피해 다녀야 하는지 알려주는 정보가 필요하고, 시내 길거리에 똥이 너무 많다 보니 이를 감시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은 자본주의의 최고 선진국이고 미국에서도 첨단기술이 집중된 곳이 샌프란시스코인데, 우리의 미래가 이런 모습이라면 자본주의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미국과 소련이 각각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대표해 싸우다가 소련이 망하고 난 후에는 자본주의가 영원히 번창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사람이 생산하는 시대에, 균등한 분배로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공산주의는 결국 생산이 모자라 가난하게 되었고 망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세계는 자연히 자본주의를 중심으로 편입되게 되었고 세계 각국은 자본주의 선진국인 미국을 모델로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자본주의 선진국인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 왜 이런 현상이 생긴 것일까? 미국은 집을 살 때 장기 은행융자를 받아 사야 세금도 적게 내므로 대부분 융자를 받는다. 이 경우 직장이 있는 사람은 별문제가 없지만, 직장을 잃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융자금을 갚을 수 없게 된 사람은 집에서 쫓겨나 하루아침에 노숙자가 될 수도 있다. 

금융위기와 코로나19로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많다 보니 이들이 집에서 쫓겨나 노숙자가 되고, 올해 캘리포니아주의 노숙자 수가 10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대변을 보는 것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지만, 노숙자는 대변 욕구를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 길거리에서 해결하고, 길거리에 똥이 즐비하니 똥 지도가 생기게 된 것이다. 

이 현상은 코로나 같은 위기에 나타나는 일시적인 것으로 앞으로는 좋아질까?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화하고 노숙자 수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 융자를 갚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면 집값이 폭락하는데 부자에게는 이런 위기가 기회가 된다. 헐값에 집을 구입하여 나중에 비쌀 때 팔아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에서 금융기법이 발달하면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이 벌어진다. 따라서 온갖 금융기법(예: 각종 파생상품)이 생기기도 하고, 소수의 부자가 사모펀드를 만들어 헐값의 집을 구입하여 임대업을 하기도 한다. 

이제까지 임대는 집을 2채 정도 가진 개인이 여유 집을 세놓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거대 자본이 이런 시장에 뛰어들어 집값을 조종하고 임대업을 하니 이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이제까지는 집에 하자가 생기면 임대인의 요구에 따라 임차인이 고쳐주었는데 거대자본이 제공하는 임대업은 임대인이 을이 된다. 잘못하면 개인이 대기업과 법정 싸움을 벌이게 되고(법정에 가면 돈 싸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임대료를 제때 내지 못하면 즉시 길거리로 내몰려 노숙자가 되기도 한다. 

오늘날은 자본주의가 종교가 되어 모두가 돈, 돈, 돈이 되는 일이면 무슨 짓이든 할 태세다. 돈으로 광고를 좌지우지하여 여론도 조작하고, 로비로 정치인들을 구워삶아 법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형태로 만든다. 그러다 보니 빈부격차는 더욱 심화하고 약자들은 길거리에 내몰리는 것이다. 

더구나 4차산업으로 경제구조가 개편되는 시기에 코로나19가 들이닥쳐 대량 실업으로 이어지면서 실업자는 집을 잃고 노숙자로 내몰리고 있다. 또 로봇이나 인공지능의 등장에 따라 이제 노동생산성보다 자본생산성이 더 높다. 즉 사람에게 일을 시키는 것보다 로봇으로 생산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기업주 입장에서는 사람보다 로봇을 사용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즉 자본을 투입하여 로봇을 설치하고 인공지능에 일을 시키면 하루 24시간 일을 시킬 수도 있고, 의료보험이나 퇴직금과 같은 복지비용을 생각할 필요도 없다.  앞으로는 돈(자본)을 가진 사람이 돈을 벌게 되어 있다. 더구나 사모펀드같이 끝없는 욕망을 추구하면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약자는 더욱 길거리에 내몰리게 된다. 더구나 이런 재산이 대를 이어 물려주게 된다면  불평등은 대를 이어 심화할 것이다. 자본주의는 자신의 능력에 따라 대우를 받는다고 하는데, 부모의 재산이 없는 약자는 교육의 질도 낮아지고 사회진출부터 밑바닥을 헤매야 하니 부가 대물림되는 것이다. 

경제발전을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 보면 “몇 명이 일해서 몇 명이 먹고 살 수 있는가?” 하는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원시시대에는 10명이 있으면 10명 모두 일을 해야 했지만 사회가 발전할수록 10명 중 1명이 놀아도 되고, 이 숫자는 점차 늘어났다. 이제는 일주일 7일 중 5일만 일해도 되니 10명 중 3명 정도는 놀고먹을 수 있고, 앞으로 자율자동차, 로봇, 인공지능 등의 기술 발전으로 1명만 일해도 10명이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다. 즉 10명 중 9명은 놀고 1명만 일해도 될 것 같다. 그러면 누가 일하고 노는 사람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가 문제가 된다. 옛날에는 노는 사람이 덩치로 싸움 잘하는 사람이 되는 시대(원시사회)도 있었고, 종교로 결정되기도 하고(중세사회), 핏줄로 결정되는 시대(왕조시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돈으로 결정된다. 앞으로도 돈으로 결정하는 것이 옳은 방법일까?

우리는 능력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부모의 부에 따라 교육의 기회가 달라지고 사회 진출에 차이가 난다면 이것이 능력이라고 볼 수 있는가? 특히 로봇이나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자본을 축적한다면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과연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인가? 공동체에 이바지한 측면에서 보더라도 이들이 로봇의 개발이나 인공지능 발전 및 공동체 발전에 얼마나 이바지하였는가? 자본이 자본을 끝없이 추구하는 자본주의가 과연 바람직한 우리의 미래 모습인가?

앞으로 로봇이나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는 시대에도 생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한가? 기계로 얼마든지 생산을 할 수 있는 시대에도 왜 인간의 동기부여가 중요한가? 자본이 끝없는 탐욕을 부려 약자들은 길거리로 내팽개쳐지는데 국가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 우리는 자본주의의 최고 선진국이 미국이라고 생각하는데, 약자는 아파도 병원에 갈 수도 없고 노숙자로 내몰리는 미국의 현실을 보면서 우리의 미래는 지금과 같은 형태의 자본주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정치체제는 민주주의를 선호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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