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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을 맞으면서

JungTae Lee 0

아침에 일어나니 미국에 있는 사위와 딸로부터 축하 메시지가 와 있었다. 미국에서 아빠 칠순 생일에 맞춰 한 보따리의 선물도 보냈단다. 마누라는 생일상을 차려야 한다며 아픈 몸으로 아침 일찍부터 서두른다. 며느리는 오늘 기념사진 찍으려면 메이크업을 해야 한다며 사람들을 집으로 보내고 사진작가를 초대해 야외 촬영도 한단다. 그리고 저녁은 조선호텔에서 파티를 준비해 놓고, 부산에서 제일 높은 엘시티에 있는 6성급 호텔인 시그니엘 호텔을 예약해 주었다. 내 생에 처음으로 1박에 50만 원이 넘는 방에도 투숙해 본다.  사위의 말처럼 요 며칠은 귀족처럼 보낸 것 같다. 

마음은 다 너무나 고맙다. 그런데 솔직히 뭔가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다. 평생 평범하게 살았는데 귀족처럼 살려니 낯설고 초대받지 않은 파티에 참석한 기분이다. 최고급 호텔에서는 만나는 직원마다 인사를 하고, 가볍게 직접 들고 갈 수 있는 가방도 모두 운반해준다. 몸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라 부자연스럽고 어색하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너무 부담을 준 것 같아 마음도 무겁다.

인생을 뒤돌아보면 이제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는 시기다. 한때는 나도 해가 영원히 지지 않고, 실력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 나이가 되어 뒤돌아보니 그게 아닌 것 같다.  “인생은 운이다.”라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인다. 실력은 갖추어야겠지만 실력이 있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운이 닿아야 한다. 내가 시골 중학교에 가지 않고 도회지 중학교로 진학한 것도 그렇고 연구소를 떠나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것과 1970년대 말부터 인터넷을 전공한 것도 그렇다. 이메일을 두고 모든 사람이 “세상에 그런 것이 어딨어” 하던 시대인데 인터넷을 전공한 것이니 보통 운은 아닌 것 같다. 삶을 살아오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것도 그렇다. 좋은 친구들과 한평생을 보내고 고비마다 은인을 만난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운이 좋아 한평생을 잘 보낸 것 같아 좀 더 겸손하고 감사하면서 살려고 노력해야겠다. 

칠순을 맞아 40이 넘은 딸은 아빠가 벌써 70이라 슬프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솔직히 무덤덤하다. 나이가 드니 눈도 침침하고 무릎도 아프고 족저근막염으로 아침이면 발바닥이 고통스럽다. 마누라는 왼눈이 잘 안 보이고 허리 협착으로 할머니가 되었다. 이것만 생각하면 우울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늙으면 누구나 고장이 생기게 마련이다. “내가 왜 이런가?” 하면서 이 병원 저 병원에 다닐 만한데, 그저 거쳐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며 무덤덤하게 살고 싶다.  

매형은 올해 81세인데 몇 년 전부터 운전대를 놓았다. 한번은 외제 차를 받아 크게 물려주고 이어서 사람을 칠 뻔한 일이 있고 나서는 자식들의 만류로 운전대를 놓았다. 그 후로는 어디로 갈 때마다 불편하여 아직도 운전에 미련이 많다. 사고가 자기 잘못이 아니고 급발진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소리를 들으면서 아들은 빙그레 웃는다. 그 차를 인수해간 사람은 잘 타고 있다고 귀엣말을 전하면서.  그래서 나도 머지않아 운전대를 놓아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내 손해의 문제가 아니라 나로 인해 다친 사람과 가족들을 생각해야 하니까.

언젠가는 크게 아플 날도 오고 결국엔 죽는 날이 올 것이다. 사람들은 평소 죽음 이야기가 나오면 무조건 멀리하고 회피하다가 몸이 아프면 고통스럽고, 운전대를 놓아야 하면 슬퍼지고, 죽음이 다가오면 통탄스러울 것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살았는데 이런 일을 당하게 되니 안타깝고 원망스러울 것이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무조건 피하면서 사는 방법도 있겠지만 나는 덤덤히 받아들이고 죽음을 지니고 다니면서 살고 싶다. 멀리하고 영원히 겪지 않을 일이라면 모르되, 겪어야 할 일이고 막상 그런 날이 다가오면 당황스럽고 고통스럽게 지내는 것보다는 평소에 적응하고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다들 아프지 않고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생일을 축하해 주면서 나보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도록 기도해준다. 고맙지만 그 소리를 들으면 안 될 일에 매달리는 기분이다. 그런데 소원대로 오래 살면 성공한 것일까?

며칠 전 친구 엄마가 돌아가셨다. 아직 100살이 가까운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 70이 넘은 아들은 언제 어디에 가나 마음이 편치 못하다.  자신의 몸도 무거운데 혹시 두 분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고. 대신에 나는 15년 전에 부모님이 다 돌아가셔서 그런 걱정은 없이 살아왔다. 내가 100살까지 살면 내 아들딸이 70대가 될 것이다. 그럼 내 친구처럼 부담이 될 것인데 나는 건강하게 그렇게 오래 살 자신도 없고 그렇게 오래 살고 싶지도 않다. 

호스피스 생활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한 것이 있다. 병원에서 살려고 발버둥 치면서 고통스럽게 생을 마무리하고 싶지 않다고. 살리려면 진통제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통증 속에 살다가 생을 마치는 사람을 수도 없이 보아왔다. 그때마다 의사들이 아쉬웠다.  “환자와 위치를 바꾼다면 그런 선택을 할까?” 하고. 내가 그 처지가 되면 통증은 제어하지만 죽음을 받아들이고 집에서 가족과 이별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여기저기 아프다가 언젠가는 남의 도움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날도 올 것이다. 그래도 부부가 같이 살면 한 사람에 문제가 있으면 서로 도와주면서 살면 된다. 그리고 배우자가 죽었지만, 자력으로 살 수 있으면 혼자 힘으로 살면 된다. 문제는 혼자인데 자력으로 살 수 없을 때이다. 희망도 없는데 국가 돈만 낭비하고 자식들에게 큰 짐이 되는 상태로 명만 이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때까지 우리 사회가 조력사를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때가 되면 의사가 주사 한 대를 놓아주어 죽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아직은 이것이 허용되지 않으니 어떤 방법이  좋을까 생각해 본다. 좀 독하기도 하고 부자연스러운 면은 있지만 “입맛이 없다.” 하면서 입을 닫는 방법이 있을 것 같다. 내가 나를 위한 최고의 기도가 있다면 자력으로 연명할 수 없을 때 입을 닫게 해 달라는 것이다.

이제 불편하고 아프고 죽는 과정들이 서서히 다가올 것이다. 이런 과정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나에게 허용된 하루하루를 힘차고 행복하게 보내련다. 인연 따라 살고 불평 없이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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