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TV를 보고 있는데, 한복을 정결하게 차려입은 한 할머니가 자랑스럽게 며느리를 교육한 이야기를 했다. 시집와서 얼마 안 된 며느리가 남편과 시누이와 술을 마시다가 취해서 집에서 쫓아내(사돈과 미리 의논한 후 쫓아냈다고 함), 며느리 교육을 제대로 했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이때 옆에 앉은 젊은 출연자들은 도저히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옛날처럼 시집가서 절대복종해야 한다는 가치관에서는 자랑스러운 이야기이겠지만 , 부부가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신세대의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노인들은 요사이 젊은이들을 보면서 세상이 망해간다고 탄식하는 것이다.
BTS가 빌보드 차트 1위를 했다는 “다이너마이트”가 하도 인기가 좋다고 하기에 한 번 들어 보았다. 그러니 옛날 생각이 났다. 내가 대학교 다니던 시대에 송창식 가수의 “고래사냥”의 인기가 대단했다.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갈 때도 대학생들이 “고래사냥”을 소리높여 부르고 주위 승객들이 허용하던 시대의 이야기다. 그때 큰매형은 “홍도야 울지마라”라는 노래를 부르시면서 “고래사냥”을 모르기에, 나는 속으로 ‘어떻게 “고래사냥”을 모를 수 있나?’ 하고 생각했다. 내가 “다이너마이트”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보면 요즈음 젊은이들은 ‘어떻게 “다이너마이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나?’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노래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가치관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먹는 것이 풍부하지 않은 시대에 자란 노인들은 그런 경험으로부터 신경망을 형성하였고 그런 신경망으로 세상을 해석한다. 대신에 요사이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배고픔을 모르고 자랐고, 남녀 구분이 없는 환경에서 신경망을 형성하였다. 그러니 세상의 현상을 두고 해석하는 방법은 당연히 다를 것이다.
옛날에는 어떤 집에 아들이 없으면 양자라는 것을 들여 대를 잇게 했다. 그래서 세상은 남자 중심으로 돌아가고, 여자는 “시집을 간다”라고 했고, “시집가면 벙어리로 3년, 귀머거리로 3년, 눈 봉사로 3년” 살아야 한다고 했다. 남자보다 여자는 교육의 기회도 적고 여필종부라는 핑계로 순종을 강요받았다. 그런 가치관으로 보면 여자가 시집을 와서 술주정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일 것이다. 그러나 요사이는 여자에게도 남자와 동등한 교육 기회가 주어지고 내 딸이 옛날처럼 시집가서 고생하는 삶을 살기를 원치 않는다면 당연히 며느리도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그런 환경에서 자랐고 그런 환경에서 신경망이 만들어졌으니 다수의 사람이 생각하는 가치관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노인들의 생각처럼 세상이 나빠지거나 망해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감을 통해 세상의 신호를 받아들이고 그렇게 받아들인 신호를 나의 신경망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경망이 다르면 당연히 세상을 다르게 해석하고 그렇게 해석하는 신경망이 다수를 이루면 그 사회의 가치관이 형성되는 것이다. 인간이란 불변의 실체가 있고 인간이라면 변하지 않고 절대로 지켜야 하는 가치관이 있는 것이 아니다. 시대에 따라 가치관이 변하면 변하는 가치관에 맞추어 사는 것 지혜로운 것이다.
강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의 가치관이 절대 불변인 것처럼 고집하고 상대를 바꾸려고 고집하면 고립되고 도태될 뿐이다. 그래서 젊은이와 어울리고 싶으면 BTS의 “다이너마이트”를 배우거나 아니면 한발 물러나 “고래사냥”을 중얼거리면서 쓸쓸히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내가 젊은이들에게 “고래사냥”을 좋아하도록 만드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