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Enter" to skip to content

어디에도 갇혀 살지 마라

JungTae Lee 0

나는 밥을 아주 빨리 먹는 편이다. 대화를 나누면서 밥을 먹으면 다른 사람들은 반도 먹지 못했는데 나는 밥그릇을 다 비우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위장이 좋지 않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밥을 먹고 있는 그 순간에 “내가 빨리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습관대로(실제로는 신경망에 프로그램된 대로) 빨리 먹게 된다. 즉 프로그램된 대로 행동하고 그 세계에 갇혀있는 것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세상이 초비상이다. 코로나에 감염되는 것도 걱정이지만 펜데믹을 막기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모든 분야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의료 붕괴도 걱정이고, 학생들은 학교에 갈 수 없고, 식당과 같은 자영업자는 장사가 되지 않아 죽을 맛이다. 일부 전문가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이러다가는 노동자의 1/3정도가 직장을 잃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한다. 

이런 판국에 일부교회에서는 우리 공동체의 존립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행위를 하고 있어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교회에 외부 세력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터뜨렸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일부 교인은 바이러스 검사에 응하기는 커녕 역학조사를 하러 나간 보건소 직원에게 침을 뱉고, “너도 바이러스 검사를 해 보라”는 행위를 스스럼없이 저지러기도 한다. TV를 함께 시청하던 주위 사람들은 “저 사람들은 어떤 세상에 사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평소에 교회 목사의 이야기를 믿고 그 속에 갇혀 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목사가 하는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든지 믿으니 목사가 이야기하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도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그 세상에 갇혀 사는 것이다. 

광화문 집회 참석자들의 코로나 확진자도 문제다. 아직 참석자조차 파악되지 않고 이들은 검사에 협조하지도 않으니 누가 확진자인지 알 수가 없다. 광화문 집회에는 전국적으로 참여하였다고 하니 코로나가 전국적으로 대유행에 들어가지 않을까 전전긍긍이다. 더구나 광화문 집회에는 노인들이 많이 참석했다고 하니, 젊은이들은 노인이 곁에 오면 피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코로나 검사도 받지 않고 명단도 파악되지 않으니 일단 조심할 수 밖에 없다. 이들은 손자까지 감염시켜 문제를 일으키면서도 일부 극우 언론이나 유튜버가 제공하는 세상에 갇혀 사는 것 같다. 

광화문 집회에서는 지사까지 지내고 국회의원도 3선이나 한 사람이 경찰관의 검사 권유에 “내가 누군데 감히” 하는 자세로 임하는 것을 보고 실망스러웠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등으로 쌓은 그동안의 신망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전에도 119에 전화를 하여 “내가 XXX 인데” 하는 유명한 사건이 생각나서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이 부끄러운 비디오를 본인이 인터넷에 올렸다는 사실이다. 나 같으면 이런 비디오가 있다면 감추려고 했을 것인데, 이를 자랑스럽게(?) 공개한 것을 보면 “나는 이렇게 독재에 항거하고 있다” 하는 것을 자랑하려고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과 동떨어져 자기 세계에 갇혀 사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이렇게 갇혀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작년에 대통령이 지명한 법무부 장관 가족에 대해서는 70여곳 이상을 압수수색하고 언론에 이와 같은 기사가 수만건 이상 도배되어 한동안 나라 전체가 난리 법석을 피웠는데 검사들의 성추행 사건에는 그냥 넘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공정하지 않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라는 구호도 나오게 되었는데 아직 검사들은 “내가 검산데, 감히” 하는 세상에 갇혀 사는 것 같다. 

경기도 의사협회 회장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테러라고 했다. 의사 정도로 배운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히 의사협회 회장이라는 사람의 행동을 보면 “우리는 의산데” 하는 세상에 갇혀 사는 것 같다. 

이제까지는 이렇게 갇혀 “내가 국회의원인데”, “내가 검산데”, “내가 의산데” 하는 세상에 갇혀 살아도 사회에 통용되었다. 그러나 이제 정보는 독점될 수 없고 모든 정보가 공개되는 세상에 이런 태도가 비판의 대상이 되고, 국민들은 갑질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 

갇혀 살면 변하기도 어렵고 코로나를 대하는 행동과 같이 잘못된 경우에는 큰 댓가를 치르게 된다. 더구나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세상에 갇혀 사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내가 갇혀 있지 않은지 점검하고 알아차려야 한다  

나는 유교집안에 태어나서 제사를 잘 지내야 집안이 잘 된다는 교육은 철두철미하게 받으며 자랐다. 그런데 1970년대 말 우리나라에 인터넷을 도입하려고 선진 각국을 시찰할 기회가 있었는데, 우리나라에 비해 선진국이 너무 잘 살아서 이 사람들은 제사를 정말 잘 지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제사를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 보니 아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40~50년 전의 이야기이니 황당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제사를 잘 지내지도 않는 형편없는 상놈들이 이렇게 잘 산다니” 큰 충격이었다. 한국이라는 세계에 갇혀 살았다면 제사에 대한 생각을 벗어날 수 없었을텐데, 바깥에서 보니 “제사라는 제도는 우리끼리 약속이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우리끼리 약속은 우리끼리 합의하여 바꾸면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이 사건을 겪으면서 내가 어디에 갇혀 살지 않는지 언제나 자신을 성찰하는 자세를 갖게 되었다. 

사랑제일교회 신도라면 그 세계에만 갇혀 살 것이 아니라 그 바깥 세계에 나와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검사라면 검사라는 세상에 갇혀 살 것이 아니라 검사 바깥의 세상 사람들이 검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내가 의산데 하는 세상에 갇혀 의사는 친절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런 세상에 갇혀 산다면 세상이 변하면 큰 고통을 당할 수 밖에 없다. 

자신의 세상에 갇혀 살지 말고 그 바깥에 나와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심지어 나라는 것도 두뇌가 만든 것인데, 순간순간 나라는 것에 갇혀 살지 않는지도 살펴 보아야 하는데, 세상 일에서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어디에도 갇혀 살지 말아야지…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Bitna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