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간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깊이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심리학자의 아들이 풍선을 사달라고 막무가내로 억지를 써서 할 수 없이 사 주었는데, 잠시 갖고 놀다가는 풍선을 버렸다고 한다. 그렇게 사달라던 풍선을 왜 버렸는지 궁금해서 찍은 사진을 비교해 보니, 사달라고 억지를 부릴 때에는 주위 아이들도 풍선을 가지고 있었는데, 풍선을 버릴 때 사진을 보니 주위에는 풍선을 가진 아이가 없었다고 한다. 풍선이 필요해서 산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필요해진 것이다.
아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어른도 마찬가지다. 물건을 살 때는 꼭 필요해서 산다고 생각하지만 한번 사용하고는 처박아둔다. 필요해서 산 것이 아니라 남들이 가지고 있으므로 구입하게 되었는데, 우리는 필요해서 샀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우는 부지기수다. 마누라의 말을 맞받아쳐 놓고는 내가 옳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 소리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한다. 아이가 공부는 하지 않고 비디오만 본다고 혼줄을 내 놓고는 상처받은 마음을 생각하니 후회가 된다. 상대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대접이 서운하다고 불같이 화를 내 놓고 감옥에 가서는 자신의 행동이 부끄럽고 후회스럽다. 우리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뭔가 실수 덩어리라는 생각도 든다.
인간은 말을 하든, 행동을 하든, 심지어 감정이나 생각도 두뇌의 제어 하에 이루어진다. 그래서 중풍으로 언어중추에 손상을 입으면 말을 못하게 되고, 운동중추를 다치면 행동을 못하기도 한다.
두뇌는 신경망이라는 구조로 되어 있다. 신경세포와 시냅스가 거미줄처럼 엮여 있어 외부로부터 오감을 통해 신호가 들어오면 신경망의 구조에 따라 처리하고 그 결과가 말이나 행동, 감정이나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다.
행동을 예로들어 생각해 보자. 길을 가다 담배냄새가 나면 담배 피우는 사람을 피하게 된다. 이 때 담배냄새가 후각을 통해 들어 오면 시각을 통해 담배피우는 사람을 확인하고 다른 길로 가게 된다. 다른 길로 가기 위해서는 무수한 근육을 제어해야 하는데 이 제어신호를 모두 두뇌 신경망을 거쳐 다리의 근육을 제어하여 가던 길을 바꾸게 된다.
우리가 이런 과정을 전부 의식하고 근육 하나하나를 제어해야 한다면 다른 아무일도 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과정은 전부 자동으로, 신경망에 프로그램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담배를 싫어하니까 저 사람을 피해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신경 프로그램은 언제 만들어졌는가? Here&Now(지금 여기)에 저 담배피우는 사람을 보는 순간에 피해야겠다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신경망이 그렇게 제어하는 것인가? 그러면 우리는 늦어서 아무 일도 못하게 된다. 신경망은 프로그램된 대로 동작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신경망은 There&Then(거기 그때)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프로그램된 대로, 무의식적으로, 습관대로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프로그램된 대로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착각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무의식적으로 습관대로 행동한다.
프로그램된 대로 행동해도 환경이 바뀌지 않았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러나 환경이 바뀌면 그에 대응하는 방법도 달라야 한다. 대응하는 방법이 사소한 경우이면 별 문제가 없지만 큰 고통이나 생명에 위협이 된다면 대응하는 행동이 달라져야 한다.
프로그램된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으려면 알아차려야 한다. 프로그램된 대로, 습관대로 반응하고 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4차산업혁명이 다가오고 있다. 코로나19로 그 변화가 바로 눈 앞에 다가오고 있다. 즉 세상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신경망은 옛날에 만들어진 신경망이다. 이 신경망으로 급변하는 시대에 살아 남으려면 순간순간 알아차림이 필요하다. 순간순간 깨어있어야 새로운 시대를 지혜롭게 해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