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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안 해도 되는구나

JungTae Lee 0

이제까지 우리는 직장에 출근해야 하고, 공부하려면 학교에 가야하고, 아프면 병원에 가야하고,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아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겪어면서 이제 “그렇게 안해도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기 시작하고 있다. 

평소에 20분이면 갈 거리를 매일 한시간씩 걸려 출퇴근해야 하니 짜증스럽다. 시도 때도 없이 호출하는 상사의 부름을 받으면 일보다 스트레스가 더 쌓인다.  그러면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친구가 부럽다. 간혹 SNS에서 여행하면서 근무한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남의 이야기 같았는데 코로나19로 직장에 나오지 말고 집에서 근무하라고 한다. 직장에 안가도 근무할 수가 있구나.

손녀는 매일 공부하러 학교에 간다. 평일에 학교에 안간다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학교에 오지마라고 한다. 대신에 집에서 원격수업으로 공부하라고 한다. 학교에 안가도 공부할 수가 있구나.

아들은 운동하러 헬스클럽에 갔다.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여기도 폐쇄되었다. 초기에는 “곧 열겠지” 하며 기다리다가 계속되어 이제는 집에서 닌텐도 VR기기로 운동을 한다. 아, 헬스클럽에 안가도 운동을 할 수 있구나.

생필품을 사려면 대형몰이나 백화점에 갔다. 그런데 이제 코로나19 감염 때문에 내키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최저가로 구입한다. 더구나 다음날이면 집에까지 배달해준다. 특히 외국에는 코로나로 사재기가 횡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경우도 인터넷에서는 구입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지역적으로는 품귀현상이 일어나지만 지구차원에서 접근하면 이 문제도 완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뉴욕에서는 마스크가 품귀현상을 일으키지만 아마존에서 중국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제 대형몰이나 백화점에 안가도 물건을 살 수가 있구나.

아이들은 모두 결혼해서 독립해 나가고 부부 둘이서 매식을 준비해 먹기가 귀찮을 때가 있다. 그래서 동네 식당을 자주 이용하였는데 코로나19 사태가 발생된 이후에는 우리같은 노인이 감염이라도 되면 큰 일이기 때문에 망스려진다. 그런데 배달앱으로 주문하면 조금 후에 배달해준다. 식당에서 먹는 것과는 분위기가 다르지만 이것도 점차 익숙해질 것이다. 식당에 안가도 식당 음식을 먹을 수 있구나. 

평소에 간혹 은행에 가면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이제까지는 인터넷팽킹에서 송금정도만 가능했기 때문에 개좌개설 등을 위해서는 은행에 가야했다. 그러나 이제는 대부분의 은행업무를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다. 은행에 가지 않고도 은행업무를 해결할 수 있구나.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허용되고 있는 원격진료가 우리나라에서는 의료계와 시민사회의 반발로 실시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우리나라에서도 한시적으로 원격진료가 허용되고 있다. 고혈압으로 매달 병원에 가야하는 친구는 전화로 약을 탈 수 있어 대만족이라고 한다. 병원에 가면 똑같은 질문과 대답이 반복되는데, 이러한 1분 진료를 위해 하루를 허비해야 했던 것에 비해 전화로 처방까지 받아 동네 약국에서 약을 탈 수 있으니 만족할 수 밖에. 병원에 안가도 진찰받고 약도 탈 수 있구나.

어제께는 친구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당연히 조문을 가야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조문 사절이라고 한다. SNS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조의금은 계좌이체시켰다. 장례식에 안가도 조문을 할 수 있구나.

2월말에는 부모님 제사가 있었다. 평소같으면 형제들이 다 모이는데 형제들이 다 나이가 많고 코로나19의 고위험군이라 Duo를 사용하여 원격제사(?)를 지냈다.  제상은 평소처럼 차려두고 순서에 따라 원격에서 절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속담에 귀신같이 안다고 하니, 조상들이 어디에도 찾아오실 수 있지 않겠는가(?). 이제 원격에서 제사도 지낼 수 있게 되었구나. 

일부 개신교에서는 주말예배를 고집하고 있지만 신천지 때문에 고생한 경험으로 대부분의 국민들은 코로나19 확산을 염려하여 온라인 예배를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불교, 천주교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온라인으로 대치하고 있다. 이제 교회에 안가도 예배를 볼 수 있구나.

제4차산업혁명이나 디지털 혁명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회자되고 있지만 아직 우리와는 먼 이야기로 치부되고, 설사 도입하려 해도 저항이 컸는데 코로나19로 선택의 여지없이 한걸음 내딛게 되었다. 코로나19는 감염, 사망 등으로 우리를 공포스럽게 만들고, 특히 경제를 힘들게 만들고 있지만, 우리에게 하나의 큰 통찰을 주고 있다. 그렇게 안 해도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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