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필리핀에 수출한 폐비닐 때문에 국제적인 망신을 산 적이 있다. 한국에서 처리하기 어려운 폐비닐을 필리핀에 수출하여 산더미처럼 쌓았는데,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다시 가져가라고 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공장을 빌려 폐기물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도망 가기도 하고, 각 지자체는 산더미처럼 쌓이는 쓰레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사람이 많은데, 선진국에서는 음식이 남아돈다. 옛날에는 우리집에 음식이 남으면 이웃에 나누어 주고, 이렇게 신세를 진 이웃은 나중에 과일이 생기면 나누어 먹었다. 그러나 요사이는 모두 아파트에서 남처럼 사는데, 음식물이 남으면 쓰레기로 버리면 버렸지 나누어 먹지 않는다.
지구 온난화로 이상기후가 자꾸 잦아지고 있다. 제주도에만 키울 수 있던 밀감나무를 육지에서도 키울 수 있지만, 열대지역에만 있던 해초류가 남해안 해수욕장까지 침범해 오고 있다. 이제 더울 때는 지독히 덥다가 추울 때는 끝내주게 춥다. 비가 한번 오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솟아져 도시가 물바다가 되기도 한다. 봄이 오면 날씨가 풀리고 꽃이 피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좋아했는데, 이제 미세먼지 때문에 봄이 오면 겁난다는 사람도 있다. 미세먼지의 주범이라고 하는 자동차는 하루에 한 두시간, 주말에만 겨우 몇시간 사용하는데, 모든 집에 자동차가 있으니 주차장은 지어도 지어도 모자라고, 자동차가 내 품는 열기 때문에 날씨는 무덥기만 하다.
우리 모두가 이런 걱정을 하지만 설마 어떻게 되겠지 한다. 물고기가 불을 지피는 가마솥에 들어가 미지근해서 견딜만 하니 그럭저럭 지내는데, 그러다가 언제 죽게 되는 것처럼 우리 인간도 물고기의 신세가 아닌지 모르겠다.
더구나 인공지능을 필두로 하는 4차산업은 로보트가 생산하고 자율자동차가 사람을 대신하여 운전을 하고, AI가 사람을 대신하여 일을 한다. 따라서 생산은 증가할 수 있지만 빈부격차가 더욱 벌어져 많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극소수의 사람들은 엄청난 부자가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우리는 돈을 기반으로 한 지금의 화폐경제시스템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 틀에서만 생각하고 산다. 이런 화폐경제시스템도 인간이 고안한 제도이고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시스템임에도 불구하고 그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본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지금의 화폐경제시스템에서는 앞서 열거한 문제점을 안고 있고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가 없다.
인간은 원래 내가 남는 것은 남에게 나누어주는 공동체를 기반으로 시작하였다. 다음으로 물물교환으로 서로 필요한 물건을 구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지만 이 또한 불편하기 그지 없기 때문에 금본위의 화폐시스템으로 발전하여 지금의 신용기반 화폐시스템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화폐시스템은 태생적으로 문제점을 않고 있고, 그 부작용이 앞서 언급한 문제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기 100명이 있다고 치자. 어떤 사람(지금의 중앙은행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1억을 가져와서 100명에게 각자 100만원씩 나누어주고, 이 화폐로 경제활동을 하여 돈을 버는데, 일년 후에 나에게 10%의 이자를 지불하라고 했다고 치자. 100만원씩 받아간 사람들은 각자 경제활동을 하여 100만원보다 더 많이 번 사람도 있고 100만원에서 많이 잃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1년 후에 어떤 사람은 10%의 이자를 갚고도 많이 남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100만원에서 크게 줄어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몇년이 지나면 어떤 사람은 몇 백만원이 된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100만원을 다 잃어 이자를 낼 수 없기 때문에 땅이나 집을 대신 넘겨야 하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빈부격차가 생긴다는 이야기다.
이런 화폐경제시스템은 성장하지 않으면 지탱할 수가 없다. 돈을 다 잃고 땅과 집을 날린 사람이 많으면 사회를 뒤집는 혁명이 일어나거나 아니면 화폐를 더 공급하여야 한다. 자원이나 서비스를 화폐화하여 돈을 늘려야 하는데 이것이 경제성장이다. 옛날에는 일이 생기면 이웃끼리 서로 아이들을 돌봐 주었는데 이 서비스를 돈을 받고 아이를 봐 주면 경제가 성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돈이 늘어나면 잃은 사람도 돈을 버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에 사회가 굴러갈 수 있는데, 자원을 화폐화하는 성장이 없으면 공동체는 굴러가기 어렵게 된다.
이런 화폐경제시스템에서 돈은 교환수단이지만 아울러 재산축적의 도구가 된다. 내가 쓰고 남으면 나누는 것이 아니라 축적할 수가 있다. 세상의 모든 자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치가 줄어들지만 돈만은 그렇지 않다. 자동차도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줄어들어 폐차하게 되고, 모든 음식도 시간이 지나면 부패하여 버리게 된다. 심지어 화폐의 기반이 되는 금도 시간이 지나면 흠집이 생기거나 조금씩 줄어든다. 자연의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치가 줄어드는데 돈만은 예외이고 이자를 고려하면 돈은 가치가 증가한다.
돈이 자산축적으로 도구가 되니 옛날처럼 남아 돌면 나누어 주는 미덕은 없어지게 된다. 모두가 더 많이 벌어야 하고 따라서 “남의 손해는 나의 이득”이 된다. 이런 경제구조에서는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화폐경제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자원낭비를 불러 온다. 우리는 “내돈 들여 내 돈을 버는데 무슨 상관이야”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돈을 버는 데는 공동체의 많은 도움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즉 우리는 공유자원을 공짜로 사용하여 내 돈을 번다. 여기 임야를 개간하여 육류 가공업을 하는 공장을 생각해 보자. 이 공장에 드나드는 자동차가 사용하는 도로는 국민 세금으로 만들었고, 공장 폐수로 버린 물을 정화하는데도 국민 세금이 들어간다. 또 생산품을 포장한 비닐종이를 버리는 것도 이 회사는 공짜로 이용하고 있고, 공중으로 내 뿜은 굴뚝연기도 공짜로 내뿜고 있다. 우리는 노래를 창작하거나 기술을 개발하여 특허를 취득하면 당연히 내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런 노래를 짓고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받은 교육은 공동체의 도움에 기인하고 있다. 어찌보면 이런 수많은 공동체의 공유자원을 공짜로 사용하여 내 돈을 버는 것이다. 그러니 공짜로 사용하는 공유자원의 사용료는 내가 지불하지 않으니 많이 사용할수록 유리하고, 그러니 낭비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공기는 나빠지고 물은 더러워지고, 폐비닐과 쓰레기로 몸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이런 화폐시스템은 결핍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만족이란 없고 끝없는 욕망을 추구하게 된다. 자원이 무한하면 욕심을 내지 않는다. 공기는 무한히 존재한다. 따라서 공기를 욕심내어 더 가지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풍족한 자원이면 나누어 사용한다. 사고팔기 전에는 물은 나누어 사용하였다. 물이 화폐화되는 순간부터 결핍을 느끼고 탐욕의 대상이 된다. 돈이 되려면 희소가치가 있어야 한다. 배추가 풍년이 되면 돈이 되지 않아 나누어주거나 버리게된다. 흔해 빠진 것은 돈이 되지 않는다. 모자라야 돈이 된다. 결핍되어야 돈이 되지만 반대로 화폐화되면 무엇이든 결핍이 전제된다. 결핍이 깔려 있으니 끝없는 욕망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다. 시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시간 개념이 없는 어린이는 바쁜 일도 없지만 시간이 돈이 되면서부터 시간에 대해서도 결핍을 느끼고 바쁘게 된다.
결핍은 끝없는 탐욕을 자아낸다. 탐욕은 경쟁을 만들어내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야기시킨다. 탐욕은 내것, 네것을 구분지어 분열을 만들고 이렇게 파편화되면 한쪽에서는 남아돌고 한쪽에서는 모자라게 된다. 풍요로운 서방사회에서는 하루 수조원의 음식을 버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수천명이 굶어 죽게 된다. 이런 화폐화는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자원을 낭비하게 만들며, 폐기물로 지구가 몸살을 앓게 만들고, 공해, 기후변화로 사람이 살 수 없는 지구를 만든다. 다시말해 모든 것이 화폐화되는 순간 결핍을 만들고 탐욕을 불러오며 끝없는 경쟁을 야기하고 모두가 망하는 길로 이끈다.
우리는 자원이 풍부하면 나눈다. 욕심을 낼 필요가 없다. 내가 사용하다 남는 것은 A에게 주고 A가 남는 것은 B에게 … 이렇게 나누다 보면 어느 누구는 내가 필요한 것을 나에게 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결핍을 느끼지 않고 탐욕을 부릴 필요가 없으며 평화와 공생의 길로 이끈다.
나누는 것이 선물이다. 우리는 나누어주면 감사해 한다. A가 B에게 무엇을 나누어주면 B는 A에게 감사해한다. 우리의 삶은 베푸는 것에서 시작하고 감사의 상태로 존재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가 무조건적으로 베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어릴 때는 모든 것이 거저 주어지는 것이며 선물이다. 죽을 고비를 넘기거나 죽음을 앞두고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하는 사람은 “삶이 하나의 선물”이라고 한다. 우리 삶의 원래 모습은 선물이라는 경제방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렇게 보면 결핍은 자원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화폐화되는 순간 우리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하나의 환상이다. 버리는 음식, 매주 산더미처럼 쌓이는 포장지와 비닐봉지, 하루 한 시간 사용하는 자동차, 집집마다 있으면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 운동기구, 세상을 수백번 초토화시키고도 남을 무기류 등을 생각해보라. 나누어 사용하면 삶의 질은 유지하면서 얼마든지 줄일 수 있을텐데, 우리는 이것을 확보하기 의해 밤늦도록 일을 해야하고 시간이 없어 허우적거리며 산다.
4차산업의 주력 제품인 디지털 자원은 태생적으로 무한이다. 자원에 제한이 없다. 무궁무진하다. 아무리 복사해도 그대로다. 그런데 왜 우리는 DRM을 걸어 제한된 자원으로 만들고 결핍되게 만드는가. 글도 나누고, 노래도 나누고, 그림도 나누어라. 정보도 나누어라. 교육 컨텐츠도 나누고, 법률 컨텐츠도 나누고, 의료 컨텐츠도 나누어라. 모든 정보도 공짜로 나누어라. 디지털 자원은 무한이므로 나누기 가장 적합한 자원이 아니든가.
화폐는 지금과 같은 결핍과 탐욕의 도구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나누는 선물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돈은 감사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내가 남는 것을 A에게 주면 A는 나에게 감사의 표시로 돈을 준다. 이렇게 되면 돈은 감사를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돈은 선물과 필요를 잇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돈은 선물 교환의 수단이 되어야지 자산축적으로 도구가 되면 안 된다. 그러려면 이자율을 마이너스 이자율로 해야 한다. 자연의 모든 자원처럼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치가 줄어드는 화폐가 되어야 한다.
모든 공유자원은 선물로 나누거나 아니면 사용료가 부가 되어야 한다. 개인이 돈을 버는데 공짜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회사가 비닐을 사용하면 페비닐 처리비용까지 생산품 가격에 부가되도록 해야 한다.
돈은 자산축적으로 수단이 아니라 선물교환의 수단이 되도록 지금의 화폐경제시스템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래야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지속가능한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