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들이 기본감정으로 분류하는 행복, 슬픔, 불안, 분노 중에서 앞의 3가지는 내면의 문제이지만, 분노는 말이나, 표정, 행동으로 분출되기 때문에 부작용이 크다. 비행기에서 스튜어디스에게 화를 냈다가 감옥에 가기도 하고, 부부간에 말다툼으로 이혼하기도 하며, 운전 중에 화가 나서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우리는 상대의 잘못으로 화가 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누구의 잘 잘못을 떠나, 화는 많은 부작용을 일으킨다.
화가 나면 목소리가 커지고, 얼굴이 달아오르고, 맥박이 증가하고, 호흡이 가빠진다. 왜 이럴까? 이런 현상은 인간이 진화해 오면서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발전된 것이다. 인간이 현대와 같은 환경에 산 기간은 우리 조상이 활동한 밀림의 시기에 비해 극히 짧은 기간이다. 계절에 관계없이 따뜻하고 먹을 거리를 걱정하지 않는 환경은 기껏해야 수 십년의 역사이지만, 밀림의 수 만년 역사동안 우리 조상은 언제 호랑이가 나타날지도 모르고, 어디에 가야 식량을 구할 수 있을 지 모르는 환경에서 살았다.
우리 조상이 밀림을 헤매고 다닐 때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가정해보자. 싸워서 이기든가 도망을 가야 살아 남을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위기에 대처하여 싸우든가 도망가기에 알맞은 상태로 몸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 방법이 에너지를 많이 활용할 수 있게 심장이 빨리 뛰고 호흡이 빨라진다. 혈액순환이 증가하니 얼굴이 붉어지고, 상대의 움직임을 정확히 관찰하기 위하여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지고,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반응을 싸움/도주(Fight/Flight) 반응이라고 하는데, 이 반응이 일어나면 몸은 비상시국이 된다. 화를 낸다는 것은 우리 몸이 싸움/도주 상태에 돌입하였음을 의미한다. 즉 화는 생명을 부지할 수 없을 지도 모르니 이에 대비하라는 경고신호다. 이러한 싸움/도주 반응은 밀림과 같은 환경에서는 좋은 생존 수단이지만, 현대와 같은 환경에서도 좋은 수단이 될까?
싸움/도주 반응은 우리 몸에서 필요한 부분에는 에너지를 집중 공급하고, 급하지 않는 부분에는 에너지 공급을 제한하는 위기 대처방법이다. 즉 심장, 허파, 다리의 근육, 눈동자 등에는 에너지를 집중 공급하지만, 위장과 같은 부분에는 에너지 공급을 제한한다. 따라서 반응이 일시적이고, 다시 회복된다면 문제가 없지만, 신경질적이고 화를 자주 낸다면 문제가 생긴다. 호랑이가 나타난 것도 아닌데 우리 몸에서 계속해서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아우성을 치는 경우에 해당된다. 계속해서 싸움/도주 반응을 보인다면 위장 같은 곳에는 에너지가 공급되지 않아 뻣뻣해지고 탈이 나게 마련이다. 현대와 같은 환경에서는 위기 상황이 거의 발생되지 않는데 수시로 위기 대처 알고리즘을 작동시키면 몸이 망가진다.
상대와 다툼에서 먼저 화를 낸 사람이 진다고 한다. 화를 내면 행동이나 말을 자제할 수 없기 때문에 그만큼 실수를 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즉 화를 내어 냉정함을 잃으면 말 실수를 하게 되고 상대가 이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면 지게 되어 있다. 또 내가 화를 내면 상대는 긴장하기 때문에 내 말에 설득될 가능성도 그만큼 낮아진다.
화를 내는 것은 두뇌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오동작이다. 현대 사회는 화를 낼 만큼의 위기상황도 아닌데, 화를 내는 것은 두뇌가 오동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는 아무런 비상시국이 아닌데 비상시국이라고 경고음을 울리고 난리 법석을 피우는 것이다.
종교에서는 화를 고통의 원인이라고 한다. 화를 내면 그만큼 부작용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화를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화를 내면 편도체의 동작이 활발해지는데, 두뇌 신경망은 가소성이 있기 때문에 훈련을 통해 고칠 수 있다. 외부에서 어떤 신호가 들어오면 좀비처럼 조건반사적으로 화를 낼 것이 아니라 화를 제어할 수 있도록 훈련할 수 있다.
사람들은 화를 제어한다는 것을 화를 참는 것으로 착각하는데, 참으면 나중에 한꺼번에 폭발할 수 있다. 전전두엽이 화를 내는 신경망을 억제하면 평소에는 참을 수 있지만, 임계치를 넘는 자극이 들어오면 폭발하게 된다.
화를 제어한다는 것은 화가 나는 순간을 알아차리고 이것이 오동작임을 알아차려 다른 동작으로 바꾸는 것이다. 마누라의 한 마디에 화가 나면 말을 맞받아치는 것이 아니라, 화가 나는 순간, 화가 났음을 알아차리고 이것은 오동작이므로 다른 동작(예: 화장실에 가는 등)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우리는 평소에 거의 무의식적으로 행동한다. 따라서 화가 난 순간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좀비처럼 자동 반응한다. 따라서 화를 제어하려면 먼저 화가 나는 순간, 화를 알아차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화가 난 순간을 알아차리면 화는 제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평소에 자신을 훈련해 두면 화를 입지 않아도 되고, 자신의 건강도 지킬 수 있으며, 상대를 설득시키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